“미국민은 변화를 선택했다.”
지난 2008년 제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노장 존 매케인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당선됐을 때 전 세계는 이같이 평가했다.
당시 장기간 지속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신물이 난 미국의 유권자들은 금융위기로 인한 생활고로 흑백 및 인종 갈등 같은 이념은 중요치 않았다. 자신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든 보수 정권에 대한 원망이 컸다. 이 때문에 표심은 미국의 방향에 대한 궤도 수정을 필요로 했고, 결국 개혁과 진보 성향의 젊은 흑인 대통령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그랬던 미국이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내년 11월 8일,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아직 1년 2개월이나 남은 시점임에도 미국 사회는 벌써부터 2017년 1월부터 미국을 이끌 차기 대통령 선거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TV에선 방송사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불꽃 튀는 설전을 벌이고 일부 지역에선 각당의 경선 후보들이 유세장을 돌며 표심 잡기에 혈안이다.
8년 만에 정권 탈환을 노리는 공화당에선 역대 최대 규모인 17명의 후보가 경선에 뛰어들었다. 후보들이 난립하다 보니 1부와 2부로 리그를 나눠 옥석을 가려야 하는 형국이다.
현재 17명의 경선 후보 중 부각되는 인물은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69)와 신경외과의 벤 카슨(63), 전 휴렛패커드(HP) 회장인 칼리 피오리나(60) 등 비(非)정치인 세력이다.
민주당은 오바마 현 대통령의 뒤를 이을 대선 경선 후보로 5명이 나섰다. 초반에는 힐러리 클린턴(69) 전 국무장관이 우세했지만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74)에게 밀리고 있다. 현 부통령인 조 바이든까지 출마할 경우 클린턴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 있다.
이처럼 공화당과 민주당의 역학구도만 보더라도 2016년 미국 대선 정국의 특징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유권자들 사이에 경제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민주공화 양당 모두 반(反) 기성 정치를 내세운 후보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기성 정치인들은 아예 맥을 못 추고 있다.
공화당의 트럼프와 민주당의 샌더스 돌풍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2016년 대선전의 막이 오를 때만 해도 거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이른바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막상 뚜껑을 열자 이들은 막말 논란과 좌충우돌 행동, 지칠 줄 모르는 유세 행보로 연일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두 사람의 인기 비결에 대해 “전통적인 정치색과 다른 데서 비롯된 전형적인 사례”라며 “이런 요소가 겹쳐 교란 세력을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아웃사이더 돌풍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것. 이변은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의 중론이기도 하다.
일례로 지난 2004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 경선을 들 수 있다. 당시 자유주의를 표방한 무명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대담한 공약과 파격적인 유세로 민주당원들을 매료시키면서 일찌감치 민주당 대선주자로 확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최종 승자는 막판에 당의 지지를 등에 업은 존 케리 당시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이었다. 당시 민주당원들은 공화당 측의 조지 W. 부시와의 대결에서 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존 케리의 손을 들어줬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현재 미국 선거 판도는 아웃사이더 정국이다. 이 기류가 경선 초반에 그칠 것인지, 결선까지 갈 것인지는 남은 1년 2개월간 기성 정치권의 노력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