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화학사업의 경쟁력을 분석해 보고하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중순 그룹 실무진에게 이 같이 지시했다. 삼성그룹 측에서 화학사업 부문의 인수 제안이 온 만큼 이를 면밀히 검토하라는 것이다.
최 회장은 보고서를 받아보고 나서 실무진에게 아무런 회신을 하지 않았다. 인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사업 간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국내 화학산업은 성장세가 주춤해 SK그룹 입장에선 화학 산업부문에 큰 금액을 투입하는 것이 부담됐을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업계에선 또 현 화학 부문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롯데가 주변에서 보는 시각보다 많은 금액을 투입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더욱이 롯데 측은 인수자금 조달 계획을 10월 말께 서둘러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신동주 롯데그룹 회장과 그의 형인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간에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이 이번 인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신 회장에게 지금은 그룹 경영의 분기점이다. 형과의 경영권 분쟁뿐 아니라 면세점 사업자 재선정,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롯데홈쇼핑 재승인 취소 여부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특히 조만간 결정될 면세점 사업자 선정은 호텔롯데 IPO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런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신 회장이 삼성 화학사업 인수를 국면 전환용으로 삼아 최근의 난국을 타개하려 한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사업성 측면에서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국기업평가는 롯데케미칼의 삼성 화학사업 인수를 두고 “인수대금 지급이 단기에 진행되면서 현금흐름과 재무구조 개선이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이스신용평가도 “롯데케미칼이 2018년까지 사업다각화를 위해 4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데 이어 이번 인수자금 부담까지 더해져 재무안정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사업시너지 평가도 엇갈린다. 증권가에서는 롯데케미칼이 기존에 추진한 원재료 사업 부문과 이번 삼성화학 부문의 사업 영역이 다른 만큼 뚜렷한 시너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이 삼성 화학사업을 인수하지 않은 것은 그룹 내 석유화학 부문을 축소하고 싶은 심정도 반영됐을 것”이라며 “신 회장의 이번 인수합병(M&A)이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