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원(857~?)이 ‘양양 이 상공에게 관급을 사양하겠다고 올린 계문’[上襄陽李相公讓館給啓]에는 걸어 다니는 시체라는 행시주육(行尸走肉)과 함께 주옹반낭(酒甕飯囊)이라는 말이 나온다. 술독과 밥주머니라는 뜻이다. 둘 다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걸 일컫는 말이다. 특히 주옹반낭은 먹고 마실 줄만 알 뿐 일을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을 가리킨다.
최치원은 이렇게 썼다. “술독과 밥주머니라는 예형(禰衡)의 꾸짖음도 벗어나기 어려운데, 나다니는 시체요 달리는 고깃덩이라고 한 임말(任末)의 비웃음을 어찌 면하겠습니까?”[酒甕飯囊 莫逃禰誚 行尸走肉 豈逭任嗤] 그리고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삼가 바라건대, 밝게 살피시어 미성(微誠)을 굽어 살펴주옵소서. 비옵건대 관급(館給)하는 숙식(熟食)의 공급을 정지토록 해주시옵소서.”[伏惟特垂朗鑒 俯察微誠 所賜舘給熟食 伏乞處分停供] 자신은 자격이 없으니 이제 관의 식량을 공급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었다.
주옹반낭은 삼국지에 나오는 예형이 했던 말이다. 그는 “순욱(荀彧, 조조의 책사) 정도는 그래도 억지로 이야기해 볼 수 있지만 나머지는 나무나 진흙으로 만든 인형 같아서 사람과 모습은 비슷해도 모두 술독이나 밥주머니일 뿐”이라고 했다. 재주가 너무 뛰어난 예형은 결국 조조의 미움을 샀고, 형주의 유표에 떼밀려 보내졌다가 황조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노산 이은상은 1935년 창간된 ‘문예가(文藝街)’에 발표한 수필 ‘행시주육’에 이렇게 썼다. “행시주육(行尸走肉) 의가반통(衣架飯筒)이라는 말을 문자로만 보았더니, 오늘 하루야말로 내가 바로 걸어 다닌 송장이었고, 달음질친 고깃덩이였고, 옷 걸어놓은 횃대였고, 밥 담은 통이었다.” 정말 주옹반낭이나 의가반통이 되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