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문재인 대표는 국민 불복종 운동 전개를 주장하며 국회 보이콧 등 강경 투쟁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는 “역사 국정교과서에만 매달릴 수 없다. 위기에 빠진 경제와 민생도 살려야 한다”며 “역사 국정교과서는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또 이와 함께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표는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침체된 내수경기를 살리려면 민생부터 살려야 하는데 정부가 내놓은 4대 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은 우선순위도 틀렸고 옳은 내용도 아니다”고 주장하면서 “국민들에게 절실하고 민생경제를 살릴 진짜 4대 개혁은 주거 개혁, 중소기업 개혁, 갑을 개혁, 노동 개혁”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표의 이런 언급들을 종합하면 일단 국정교과서 투쟁 전선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서 야당은 슬그머니 예결위 정상가동을 비롯한 국회 정상화에 나서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야당의 모습은 예산안 문제까지 보이콧하게 되면 여러 가지 역풍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산심의 파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작년엔 이른바 대선개입 의혹 문제로, 작년엔 누리과정 문제로, 그리고 올해는 국정교과서 문제 때문에 예산안 심사가 파행을 겪었는데 무작정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며 강경 투쟁에 몰입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년에는 총선이 있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 예산 챙기기도 해야 할 텐데 무작정 강경 투쟁만 한다면 당내 의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과 열기가 높아 이를 통해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을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대표는 예결위의 정상 가동을 비롯한 국회 정상화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표의 이런 방향 선회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요소들이 많다.
하지만 문제는 불과 며칠 사이에 이렇게 방향을 틀 것이었으면 국민 불복종 운동과 같은 지나친 강경 입장은 피력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일단 정부가 국정교과서 추진을 강행한 것은 맞지만 문제는 이 과정이 초헌법적이거나 불법적인 것이 아닌, 적법한 절차를 따른 것이었다는 점이다. 적법 절차에 대해서 야당은 반대할 수는 있지만 “국민 불복종 운동” 운운하는 행정절차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만에 입장을 바꾼다면 본인이 말한 국민 불복종 운동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그렇게 강경하던 입장이 왜 방향을 틀게 됐는지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예측 가능한 야당지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어물쩍 방향 선회를 하면 야당을 지지했던 국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이래 가지고는 정국 주도권은 고사하고 ‘이해 가능한 정치’마저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을 문재인 대표는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