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에 무심했던 미국에서도 지구온난화 문제가 핵심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버럭 오바마 대통령이 탄소배출 감축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150개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도 이런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분위기를 잘 활용하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은 1일(현지시간) 전기차 확충 계획을 때 맞춰 발표했다. 뉴욕시는 오는 2025년까지 미국 자치단체 중 최대 규모의 전기차를 운행하고 도시 전역에 충전소를 갖추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10년간 5000만~8000만 달러의 시 예산을 투입해 2000대의 전기차를 구입한다는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했다. 뉴욕시가 자체적으로 운행하고 있는 차량은 현재 1만1000대 정도. 이 가운데 절반인 경찰 및 소방용 비상차량은 제외하고 일상용을 단계적으로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것. 교통국이나 공원관리국과 같은 일선부서에서 주로 운행할 계획이다.
현재의 배터리용량으로는 장거리 운행이 어렵고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이용할 경우 충전할 시간이 없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으나 뉴욕시장의 의욕은 대단하다. 2025년까지 뉴욕시가 운행하는 차량의 배기가스를 50% 줄여 이 부분의 선두주자인 LA를 따라잡겠다는 것.
전기차 확산 계획은 뉴욕시장보다 오바마 대통령이 훨씬 먼저 내놓았다. 이미 7년 전에 2015년까지 전기차를 100만대로 확충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런데 지금 운행되고 있는 전기차는 캘리포니아주의 15만대를 비롯해 모두 33만대 정도.
미국 대통령이 공약을 하고 테슬러, 구글 같은 첨단기업이 의욕적으로 개발에 나서고 환경운동가와 전기차 애호가가 열정적인데도 보급이 왜 이렇게 더딜까? 한번 충전으로 130㎞ 정도 밖에 주행을 못하고 충전소가 충분하지 않고 차량 가격이 비싼 것이 문제라 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미국 가정에서는 전기차를 장보기용으로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장거리 주행이 필요 없고 정부 보조금과 연료비 절감을 감안하면 가격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동차 딜러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딜러는 판매에서 할부금융, 애프터서비스까지 총괄하는 독립된 기업으로 막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들이 전기차 판매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휘발유 차에 비해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딜러들은 자동차 판매보다는 애프터서비스에서 수익을 더 올리는데 전기차의 경우 타이어 교환 이외에는 애프터서비스가 필요 없고 고장날 요인도 거의 없어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객에게 전기차를 권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전기차를 사러온 고객에게도 휘발유차를 권유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판매요원이 전기차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전기차의 문제점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이런 딜러의 벽을 넘으면 그 다음은 막강한 석유메이저와 막 성장하기 시작한 셰일가스업계가 버티고 있다. 그리고 미국 전역의 그 많은 주유소와 자동차 정비소 등 자동차 관련 업계에 미칠 엄청난 영향을 먼저 해결하지 않고는 더 나아가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전기차 보급이 확산되지 않으면 메이커들의 친환경 자동차 개발과 생산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