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통신장비 기업 ZTE의 스마트폰 왕국 야심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란에 대한 제재 위반 혐의로 미국 정부로부터 금수 제재를 받으면서 미국산 핵심 부품들을 쓰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ZTE가 세계적인 통신장비 기업으로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가진 유일한 중국 브랜드였으나 대이란 제재 위반으로 상황이 좋지 않게 됐다고 8일 전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ZTE의 내부 기밀 보고서를 입수, ZTE가 이란 등의 경제 제재 대상국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와 IBM, 오라클, 델 등 미국산 첨단 장비를 수출한 증거를 포착했다. ZTE는 이같은 흔적을 숨기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까지 설립하기로 하는 등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WSJ에 따르면 2011년 8월 작성된 이 보고서에서 ZTE가 이란과 수단 북한 시리아 쿠바 등 금수 조치된 국가들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산 부품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금수 조치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또한 발각될 경우의 사태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보고서에는 “이란 프로젝트 등이 드러나면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실릴 위험이 있다. 블랙리스트에 실리면 미국 제품 공급망을 잃을 우려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또 다른 문서에는 미국이 이란 등으로 수출을 금지하고 있는 제품을 판매하려면 페이퍼 컴퍼니를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ZTE는 수출 규제가 가장 엄격한 ‘Z’로 분류된 나라에 대한 수출을 특히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상무부는 ZTE가 전세계에 판매하고 있는 통신기기에 미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금지했다. 이로 인해 ZTE는 사실상 북미시장에서는 사면초가에 내몰리는 신세가 됐다. ZTE는 통신회사에서 사용하는 라우터 및 스위치 외에 스마트폰도 생산하고 있다. 또한 통신회사 관련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미국산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ZTE의 점유율은 7%로 애플(41%), 삼성전자(23%), LG전자(14%)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았다. 그러나 이번에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 수입을 금지당한 것만으로도 ZTE의 통신장비 및 스마트폰 부문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WSJ는 전망했다. 2014년 기준,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부문은 ZTE 전체 매출의 86%를 차지했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신시아 멘 애널리스트는 “ZTE는 미국산 칩셋 일부를 가격이 싼 타국산으로 바꿀 수 있으나 그러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왜냐하면 미국산이 아닌 반도체에도 미국산 부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WSJ는 중국이 최근 미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을 강조하며, 이는 그만큼 외국산 반도체 의존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중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ZTE는 홍콩, 상하이 두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주식 거래를 중단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