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이후 재계에 냉기류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재계 상위권에 오른 주요 그룹들이 사정기관(司正)의 수사나 조사 대상에 오르면서 생긴 현상이다. 일부 그룹에서는 이 같은 칼바람이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2일 사정기관과 재계에 따르면 사정기관의 칼날이 주요 그룹으로 향하면서 재계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표적인 사정기관인 국세청과 검찰 외에도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까지 총동원 돼 대대적인 사정정국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불안섞인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재계 상황을 놓고 보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효성그룹과 부영그룹, 코오롱그룹 등에 검찰의 ‘최정예 부서’인 특수부와 국세청의 ‘대검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이 동원됐다.
주요 그룹들을 긴장케 하는 요인은 또 있다. 최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공개한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에 재계 핵심 인사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고(故) 서성환 회장의 자녀들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재계는 더욱 바짝 얼어붙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재계에서도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지금 시점에서 사정기관을 동원해 재계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A 그룹 관계자는 “가뜩이나 국내·외 경기상황도 안좋은데 재계 곳곳에 사정기관의 칼날을 들이대니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며 “현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경제살리기라는 외침이 왠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곳도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가장 앞장선 곳이 재계였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사정기관의 칼날이냐는 서운함이다.
B 그룹 관계자는 “실적이 나빠지고 경기가 불확실해도 기업들은 경제살리기에 일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고용창출에 힘썼다”며 “하지만 총선 이후 진행되는 사정기관의 수사를 보면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드러난 기업을 수사하는 것은 맞지만 현재의 경제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C 그룹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기업들을 수사하는 것은 사정기관의 당연한 책무인 것은 맞다”며 “다만 경제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할 기업들 입장에서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D 그룹 입장도 맥락이 비슷했다.
D 그룹 관계자는 “경기는 심리라는 얘기가 있는데, 지금과 같이 경기가 바닥인 상황에서 기업들을 압박하는 것은 살리려는 경기를 더 죽이는 것”이라며 “기업들이 경제살리기에 발벗고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정기관의 움직임이 단기간에 마무리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정부와 함께 경제살리기에 매진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