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의 갑작스러운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신청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채권단과의 구체적인 상의 과정 없이 일방적 통보 하루 만에 공식 발표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한진해운은 21일 산업은행 측에 자율협약 신청 의사를 밝힌 바로 다음 날인 22일 이사회를 열고 자율협약 추진을 결정했다. 이어 주말을 건너뛴 25일 채권단에 곧바로 신청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자율협약 신청 여부를 수개월 고민한 현대상선과 달리 이 모든 과정이 며칠 만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이에 대해 채권단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통상 자율협약 신청을 할 경우 사전에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은 물론 대주주 사재 출연, 사채권자 조정 방안 등을 포함한 자구안을 채권단과 논의한다”며 “하지만 한진해운의 경우 이 같은 과정 없이 갑자기 이사회를 열고 자율협약 신청을 강행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해운의 부채가 현대상선보다 많은 점을 감안하면 좀 더 고강도 자구책은 물론 대주주 역시 사재 출연 의지를 밝히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진해운의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6조6000억원에 육박해 현대상선(4조8000억원)보다 2조원가량 많다.
일각에서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달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채권단 자율협약을 사전에 협의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한진그룹 측은 이와 관련해 “수년간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독자적 자구 노력만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 채권단의 지원하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채권단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은 채 속전속결로 결정한 것은 해운업계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고려, 채권단의 사재출연 압력 등 고강도 자구노력 요구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염두에 두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채권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한진해운 측은 산업은행과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치는 등 필요한 협의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산업은행은 25일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하면 금융권 채권기관들에 조건부 자율협약 개시 여부를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채권기관들이 100% 동의하면 내달 초 자율협약이 개시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