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 우리나라의 걱정이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기업 이데올로기가 달라진다. 달라진 이데올로기에 지지자가 모이고 대중성을 가지면 정치적 정책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이상으로 넘어서는 시기일수록 일하는 조직의 이데올로기에서 소비하는 조직의 이데올로기로 급격하게 바뀌기 쉽다. 1990년대 일본의 사례이다. 일본국 주식회사(The Japan Co)라는 기업 이데올로기가 끝나고 복지형 이데올로기로 변신하게 된다. 당시 일본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재정을 산업체질 개선에 투입하기보다는 사회간접자본(SOC) 등 소모적 경기 부양으로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형적 소모형 경제 이데올로기 정책이었다. 결국 국가부채만 많아지고 산업체질 개선에는 실패했다. 이후 소니는 삼성전자에 밀리기 시작했고, 닛산은 붕괴되었다.
선진국 경제는 기업 이데올로기 싸움이고, 매개변수는 경제성장률이다. 개별산업의 기업가 환경은 더욱 나빠지기 마련이다. 돈을 가진 사람은 투자보다는 보존 관리에 더 열중할 것이고, 기업은 투자를 줄일 것이고, 해외 수출처럼 힘든 비즈니스는 더욱 기피할 것이다. 이미 소비 0.3% 감소, 설비투자 5.9% 감소, 수출 1.7% 감소라는 2016년 1분기 우리 경제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조선해양산업은 지난 10년간 미래기술 개발이라 할 수 있는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한 번도 1%를 넘어서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기술과 연구개발 투자 없이 범용품을 싸게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중국의 원가 경쟁력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는 유사한 어려움을 겪었던 2000년대 초반 독일의 성공 사례를 보자. 2001년 1.2%, 2002년 0.0%, 2003년 -0.2%의 낮은 경제성장으로 고전하던 독일은 2003년 전후 최대의 구조개혁 정책을 담은 ‘어젠다 2010’을 통해 경제 활성화에 성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일 성공의 교훈은 ‘수출과 사람’으로 완성되었다. 제품에 대한 보증과 사후 서비스가 가능하지 않은 어떤 제품도 범용품(commodity)에 불과하고 범용품 시장은 가격 싸움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독일의 히든챔피언은 수출을 상품으로 하지 않고 사람이 한다는 점이다. 사람이야말로 제품에 대한 보증과 사후 서비스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 너무 생산 중심의 나라이다. 또한 대한민국 경제정책에서 가장 인색한 것이 마케팅 투자지원 정책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출의 거래 단절률이 40%에 이르고 있다. 서비스가 필요 없는 범용품으로 가격 싸움만 하기 때문이다. 더 싼 가격으로 중국이 생산하기 시작하면 그 거래는 끊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중소기업 정책에 큰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생의 중소기업이 완생을 위한 두 집인 ‘수출’과 ‘사람’ 정책으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은 전문화를 가능케 하는 기술력이 핵심인데, 핵심 인재들이 장기 재직하여 성과 보상이 커지는 내일채움공제와 같은 정책이 개발되고 있는 것도 환영할 일이다. 중소기업에서 ‘수출을 위한 마케팅 투자’와 ‘사람’에 대한 투자 없이 한국경제의 재활성화는 어려울 것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20대 국회에서는 중소기업의 수출과 사람 정책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필자의 걱정이 기우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