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고만한 韓 증시… 투자자 엑소더스
2011년 6조 달했던 거래액 4조원대로 뚝
변동성마저 2.02%로 23년만에 최저치
전문가들도 “당분간 박스피” 한목소리
#“제 주위에서는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구요? 재미가 없어요.”
주식에 투자하는 자금 규모가 ‘억 단위’라는 30대 후반 자산가 A 씨의 말이다. 대학생 때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해 투자 경력이 20년에 가까워진다는 A 씨는 “주식투자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성장 종목들이 많아 투자에 재미가 있었지만 요즘 국내 증시는 크게 흥미를 느낄 요인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안정적인 투자를 위해 코스피 대형주에 투자에 나서 보라는 주위의 권유도 있지만 변동성이 적다고 안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리스크 관리만 잘한다면 기회는 변화가 많은 시장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몇 년째 박스권에 갇혀 지루한 움직임을 보이는 국내 주식시장은 A 씨에게 더는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 이는 A 씨만의 일이 아니다.
◇ ‘박스권’ 등락 코스피, 거래량도 ‘뚝뚝’ =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4조66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조8800억원)보다 20.7% 감소했다.
코스피 거래대금 감소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코스피 지수가 2011년 중반 이후 무려 6년간이나 1800선에서 2000선 초반 사이에서 움직이는 박스피를 형성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여왔던 것.
이에 ‘박스피’ 형성 이전에 6조원을 훌쩍 넘겼던 코스피 일 평균 거래대금은 2011년 6조9000억원대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5년째 4조~5조원대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다.
코스피지수의 변동성마저 줄고 있다. 이달 코스피지수의 월간 변동성이 2.02%를 기록해 이 수치를 집계한 1993년 4월 이후 23년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 변동성이 낮다는 것은 일간수익률의 편차가 크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변동성이 줄어들면 수익률도 횡보할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좋은 주식을 싸게 살 기회도 생기고 싸게 산 주식을 고가에 팔 기회도 만들어진다”며 “그런데 최근 시장에서는 주가의 변동성을 이끌어 낼 만한 이슈도 시장을 주도하는 종목이나 업종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들 “코스피 당분간 조정 가능성 커” = 문제는 코스피가 추가 조정 가능성이 커지면서 당분간 ‘박스권’ 탈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이달 말 중국 주식예탁증서(ADR)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지수 추가 편입을 시작으로 줄줄이 예정된 글로벌 이벤트에 영향을 받으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안병국 미래에셋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6월 16일 FOMC, 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 중국 A주 MCSI 신흥국 지수 편입 여부 결정 등 굵직한 이벤트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이 같은 대외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코스피의 추세적 강세가 나타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안병국 센터장은 “6월 금리인상 가능성 대두로 인한 달러강세 등 외국인 수급이 위축될 수 있다”며 “국내 증시를 주도하는 외국인 수급이 둔화되면서 코스피는 1920~2000선의 박스권에서 움직일 수 있어 당분간 증시에 대해 보수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도 “실제 5% 부분 편입 시 한국 비중 감소에 따른 자금이탈 규모는 약 3조원, 자금이탈 기간은 3개월로 월 1조원 내외가 출회되는 수준”이라면서도 “다만 지난 2013년 뱅가드 벤치마트 변경 당시 6개월간 9조원의 자금이 이탈했던 상황과 비교하며 기간은 절반, 금액은 3분의 1 규모라는 점에서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외국계 증권사도 코스피 시장의 추가적인 하락을 예상했다. 모건스탠리가 올해 코스피가 1900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한국 경제분석 보고서에서 “새로운 거시 경제 전망을 반영해 올해 한국 증시의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을 3%에서 -1%로 조정한다”며 “이에 따라 올해 코스피 예상치를 2000에서 1900으로 5% 낮춘다”고 밝혔다.
이어 모건스탠리는 “침체된 거시 환경이 한국 주식시장의 초과 수익 달성 가능성을 짓누르고 있다”며 “약한 성장과 낮은 수익 탓에 자본 유출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