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위험성에도 부실 채권으로 분류된 금액(고정이하 여신)은 총 대출액 84조원의 11.9%인 10조원에 불과해 앞으로 은행들의 대손충당금 적립 위험이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선·해운업 부실, 은행권 전체 부실채권 비율 상승으로 이어져= 3일 이투데이가 금융당국과 국내 17개 은행 등의 자료를 취합한 결과 조선·해운업종의 총 여신(대출) 규모는 84조8294억원(1분기 잠정치 기준)이다.
조선업계 대출은 67조3316억원이었고, 해운업 전체 대출규모는 17조4978억원이다.
이 중 부실채권은 조선업 8조1000억원이며, 해운업 2조원으로 총 10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권 전체 부실채권 규모가 31조3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3분의 1이 조선·해운업종에서 발생한 셈이다. 부실채권비율은 조선업, 해운업이 각각 12.03%, 11.43%이었다.
특히 조선·해운 업종의 부실 대부분을 떠안은 산업은행의 부실채권이 1년새 5조1000억원이나 늘어 부실채권비율이 6.7%(4%포인트 상승)를 기록했다. 다른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은 2조원이 늘어 부실채권비율이 3.35%(1.3%포인트 상승)였다.
두 국책은행이 은행권 전체의 부실채권비율을 끌어올렸다. 국내 은행의 전체 부실채권비율은 1.87%로 전년동기(1.56%) 대비 0.3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주요 국가 비율을 다소 상회하는 수준으로 미국은 1.54%(지난해 말 기준), 일본은 1.53%(지난해 9월 기준)이다.
◇은행권 충당금 적립, 시작도 안했다= 문제는 해운·조선 업종의 정상 채권으로 분류된 74조7294억원이다. 이 금액이 부실채권으로 넘어갈 경우 금융권에 거대한 후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여신 건전성은 위험성이 낮은 순서대로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 의문 △추정 손실 등 5단계로 나뉘는데, 부실채권은 고정이하 여신을 말한다.
정상 등급은 충당금을 거의 쌓지 않지만, 요주의는 대출 자산의 7~19%, 고정은 20~49%, 회수의문은 50~99%, 추정손실은 대출액의 100%를 충당금으로 각각 쌓아야 한다.
최근 STX조선이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고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3대 조선사도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만큼 은행권의 대규모 대손충당금 적립 가능성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A은행 여신관리 담당자는 “그동안 쌓은 충당금도 적지 않지만, 앞으로 2~3년 내에 지금까지 쌓은 만큼 더 적립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조선·해운업의 부실채권 규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모니터링이란 게 단순히 지켜본다는 뜻 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수준에 대해 특별 검사로 부실 발생 과정을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대출에 차가워진 은행들= 은행권 대규모 충당금의 원인이 대기업에서 발생하고 있어 대출 문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과거 대기업이 은행을 선택하며 ‘대출 쇼핑’을 했던 것과는 달리, 최근 은행에서 대출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B은행 관계자는 “경기가 워낙 안 좋고 부실율도 높아 대기업이라고 해서 무작정 대출을 늘려갈 수 없다”며 “오히려 알짜 중소기업 찾기에 더 열을 올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감원 집계한 ‘부실채권 현황’에 따르면 대기업 대출 부실채권비율은 4.07%(1분기 잠정치 기준)로 중소기업 1.64%보다 2배 이상이다.
부실율이 높은 대기업에 대해 대출문을 옥죄는 것은 은행이 더 이상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최근 한 은행은 까다로운 대출 심사로 대기업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대기업 스스로 주거래 은행을 바꾸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면서 “예전 같았으면 은행에서 특별팀을 꾸려서라도 대기업 고객을 잡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쉬울 게 없는 기업들이 많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