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 쇼크가 24일 글로벌 시장을 강타하면서 각국이 대응책 마련에 초비상이다. 이미 아시아 시장이 이날부터 브렉시트 쇼크의 영향권에 든 가운데 전 세계가 동시에 영향권에 드는 27일 ‘블랙 먼데이’ 재연을 막으려면 이번 주말이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 바 ‘브렉시트’에 대비해 이미 입을 맞췄다. 23일 영국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로 결정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갈 것을 우려, 중앙은행들은 통화 스와프를 활용해 긴급 달러자금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 급락 등을 계기로 시장이 동요치더라도 금융기관들이 달러 고갈로 인한 어려움을 최소화해주자는 취지다.
주요 7개국(G7) 의장국인 일본의 중앙은행 일본은행(BOJ)은 그동안 주 1회 달러 자금을 금융기관에 공급해왔으나 시장에서 달러 부족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연일 공급하는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 등도 이를 놓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와 구체적인 대응을 협의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16일 정례 금융정책결정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주요 중앙은행과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다”며 “(달러 부족 사태가 일어나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4일에는 영국의 EU 탈퇴가 현실화하자 “6개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와프를 활용해 유동성 공급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시장 안정 확보를 최우선할 뜻을 나타냈다.
앞서 15일 재닛 옐런 연준 의장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기자 회견에서 “영국의 EU 탈퇴가 세계 경제 및 금융 정세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 구체적인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럽 시장에서의 달러 자금 공급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중앙은행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2008년 리먼 사태와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이후 처음이다. 과거 리먼 사태 당시에 각국이 달러 가뭄에 시달리면서 국제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졌다. 단기자금시장에서 신용 리스크가 높아져 대형은행들이 달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미국 연준과 일본은행, ECB, 영란은행, 캐나다은행, 스위스국립은행 등 6개 중앙은행은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발발 당시, 리먼 사태를 반면교사로 달러 유동성 공급 시 협조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그때부터 각국 중앙은행은 별도의 회동 없이 연준에서 달러 자금을 인출해 각자의 국가 및 지역 금융기관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각국은 외환시장 개입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 겸 재무상은 24일 일본증시가 8% 폭락하고, 엔화 가치가 달러당 99엔대로 치솟자 구두개입을 단행했다. 그는 “영국의 EU 탈퇴가 세계 경제, 금융, 환율 등에 미치는 위험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브렉시트 우려에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서 달러·엔 환율은 한때 99엔대까지 하락(엔화 가치 상승)했다. 아소 재무상은 이에 대해 “매우 예민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제대로 대응하겠다”며 급격한 가격 변동을 경계했다. 그의 발언 이후 달러·엔 환율은 101.40엔을 나타냈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도 24일 시장 혼란에 대해 “국내외 관계 기관과의 공조를 긴밀히 하면서 영국 국민투표 결과가 국제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란은행도 환율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하자 24일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 가치가 한때 달러당 10% 넘게 폭락했기 때문이다. 파운드화는 단위당 달러 환산액이 크기 때문에 유로 및 달러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더라도 가격 차이가 나중에는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시장에서는 파운드를 ‘미친 말’로 부른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24일 성명을 통해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위스국립은행과 싱가포르중앙은행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각국 중앙은행이 시장의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긴급 조치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과 인도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 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이미 시장 개입을 단행했고, 덴마크 중앙은행도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단행했다고 전했다.
WSJ는 브렉시트 쇼크로 시장이 패닉에 빠지면 G7을 중심으로 시장에 진정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공조해 내보내거나 즉각 조치를 취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혼란이 장기화할 경우 당국에 남겨진 카드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메릴린치의 유럽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에 충격이 확산된 경우 훈련은 이미 됐을 수 있지만 성장에 미치는 영향 측면에서는 상황이 복잡해진다. 금융 정책을 통해 경기 부양을 도모해 왔지만 전반적으로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바코아ISI의 크리슈나 구하 부회장은 “스와프는 적어도 런던에서는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G7은 성명을 낼 것이다. 외환 시장의 기능이 손상되면 공조 개입도 있을 수 있으나 협조 개입에 장애물이 많기 때문에 개입한다면 단독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