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자유주의 정치체제에서 법은 ‘정치’이고, 사법부는 그 법을 해석·적용하여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최종적으로 확인하여 준다. 법원에서 담당하는 개개의 재판은 당사자 간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다툼이나, 그러한 다툼에 대한 판결이 모여 국가의 법 질서를 형성한다. 따라서 한 국가의 최고법원이란 단순히 법령을 해석·적용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공동체 내에서 정의가 무엇인지를 정하는 중요한 기관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국에서 연방대법관의 명칭을 ‘JUSTICE’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법원은 대법원이고, 대법원은 대법관으로 구성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위와 같은 절차를 거쳐 임명된 대법관은 그 임기 동안 대한민국의 ‘정의’를 정하는 막중한 책무를 가진다. 따라서 대법관을 누구로 임명하는가 하는 것은 국가적인 대사 중에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은 9월 취임할 대법관으로 김재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해 달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이번 제청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서울법대, 50대, 남자라는 대법관 임명의 전통 공식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은 인사였다는 것이다. 전북 임실이 고향인 교수 출신으로서 지역과 직역을 감안한 인사라고 말을 할 수는 있겠으나,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에는 큰 기여를 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 아쉬운 점은 이번 대법관 제청으로 인해 대법원의 보수적인 경향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대법관의 판결 성향에 관한 모 신문기사는 이번에 퇴임하는 이인복 대법관을 가장 진보적인 대법관으로 꼽았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중도 보수 정도로밖에 볼 수 없는 이 대법관이 가장 진보적인 현직 대법관이라는 점은 현재 대법관 구성에서 진보적 성향을 가진 대법관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임명 제청된 김재형 교수는 일반적으로 온건 보수 정도로 평가되고 있으므로 대법관 성향의 다양화에도 아무런 기여를 못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대법관 구성 및 성향의 다양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슷한 학력과 경력을 거치고 비슷한 경험과 성향을 가진 대법관들로 구성된 대법원보다는 다양한 경력과 경험 및 성향을 가진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이 법적 쟁점에 관한 논의의 스펙트럼이 넓을 것은 당연할 것이고, 첨예하고 다양한 토론을 통해 동질적인 집단의 결정이 빠질 수 있는 오류도 방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대법관 구성 및 성향의 다양화에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고, 앞으로 국회 동의 절차에서 이러한 점에 대한 심도 깊고 건전한 토론이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