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

입력 2016-08-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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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영화가 끝났다.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가슴이 먹먹하다. 시선은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향한다. “유가족 되게 해주세요!” 2년 넘게 바닷속에 있는 단원고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의 절규가 가슴을 다시 파고든다.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 “만약 제 남편이 살아 있으면 미안하지 않으시겠어요?”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라는 대통령님의 지시에 따라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남편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에게 구조대원을 죽였다며 달걀을 던지고 구조현장에서 의전용 사진 찍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모습. 영화 ‘터널’ 속 대사와 장면들은 세월호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해맑게 웃던 아이들, 애절한 유가족, 일회용 위기 모면의 수사로 일관한 무능한 정부와 정치인,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한 탐욕의 기업,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상실한 우리 사회와 지속해서 환치된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말했다. “세월호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관객들이 그런 연관성을 떠올렸다면, 그렇게 느끼게 된 현실이 슬프다.” ‘터널’ 관객 대부분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슬프기만 한 것일까. 분노했다.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이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다. 아직도 바닷속에는 9명의 미수습자가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년 4개월이 흘렀지만, 책임자 처벌은 고사하고 사건의 진실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경제논리와 피로감을 언급하며 “이만하면 됐잖아”라는 궤변이 유가족의 슬픔을 짓밟고 있다. 사건에 대한 진실 요구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있다. 성찰과 반성의 기회조차 무력화하고 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인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가공스러운 위험사회를 낳았다고 강조했다. 벡은 성찰과 반성 없는 근대화는 위험사회를 확대 재생산한다며 성찰을 전제로 한 국가 정책의 초점이 안전에 맞춰져야 가공스러운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를 야기했던 탐욕의 기업, 무능한 정부, 비리로 얼룩진 정치권, 양심 마비증에 걸린 우리 사회는 성찰과 반성은 안중에도 없다. 이 때문에 부실공사로 인해 준공된 지 한 달도 안 된 터널이 붕괴하는 영화처럼 현실에서 안전이 끊임없이 무너지고 있다.

1994년 10월 21일, 학교와 회사로 가던 학생과 직장인 등 32명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성수대교 붕괴로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502명 사망, 6명 실종, 937명 부상이라는 엄청난 상흔을 남겼다. 사건 직후 호들갑스러운 전시용 성찰과 반성만 난무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또다시 반복됐다. 진정한 반성과 거리가 먼 허언(虛言)의 다짐만이 횡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단언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고. 정치권은 선언했다. “대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함께 다시는 비극적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기업들은 약속했다. “돈보다는 사람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을까. 세월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뤄졌을까. 돈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기업으로 환골탈태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영화 ‘터널’ 속 대사로 대신한다. “터널이 무너졌어요.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

정부와 정치권, 기업, 우리 사회가 귀 기울이길 다시 한 번 당부한다. 18일로 856일째 바닷속에 있는 단원고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의 애절한 호소에. “일단 아이부터 찾아야 합니다. 평생 아파하면서 살 겁니다. 평생 그리워하면서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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