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강자는 없다...블랙베리 흥망성쇠 이야기

입력 2016-09-2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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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건 블랙베리를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쿼티 키보드 스마트폰의 대명사 ‘블랙베리’를 세상에 내놓은 마이크 라자리디스가 회사를 떠난 뒤인 2013년, 몰락해가는 블랙베리 재고를 사재기하며 한 말이다. 블랙베리가 조만간 무용지물이 돼 생산이 중단될 걸 직감한 듯한 발언이 아닌가.

그의 불길한 예견은 적중했다. 지난 7월에는 ‘블랙베리 클래식’의 단종을 선언한 블랙베리는 28일(현지시간) 자사의 스마트폰 설계 및 생산을 중단하고 외부 위탁으로 전환한다고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로써 1998년 첫 선을 보인 후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급성장한 또 하나의 신화가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지게 된 셈이다.

리서치 인 모션(RIM)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블랙베리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워털루의 베이글 가게 위에 있던 작은 사무실에서 탄생했다. 출시되자마자 모두가 갖고 싶어하는 휴대폰의 대명사가 됐고, 이는 의사 소통의 방식도 바꿔버렸다. 특히 7월 단종한 ‘블랙베리 클래식’은 블랙베리를 최고의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성장시킨 오리지널 기종의 후속 모델이었다. 넓적한 화면 아래에 작고 귀여운 버튼이 촘촘히 박힌 쿼티 키보드는 과일 ‘블랙베리’를 연상시키며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았다. 깜찍하고 귀여운 외관이 주위에 자랑하기도 좋았고, 쿼티 키보드를 탑재해 서류 작성할 일이 많은 고소득 전문직과 높은 보안성에 주요국 정상들이 주로 애용했다. 하지만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자랑하던 것도 잠시, 블랙베리는 무시하던 라이벌들에 주역의 자리를 빼앗겼다.

조류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블랙베리는 단기간에 놀라운 성공을 거둔 만큼 다양한 고민에 직면했다. 공장이 하나 밖에 없다 보니 세계적인 수요에 발 맞춰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데에 급급했다. 일손도 부족했다. 분기 매출이 전기 대비 20%나 증가했을 때에도 직원 채용에 분주했다.

이때부터 구멍이 생겼다. 실무에 쫓겨 정작 기술 경쟁에는 소홀해졌고, 실리콘밸리의 경쟁사들이 뭘 만드는지 등한시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한창 잘 나가던 2011년에 5230만 대에 달했던 판매량은 최근엔 320만 대로 고꾸라졌다.

주위를 둘러봤을 땐 이미 늦었다. 어느 새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한 것이다. “말도 안돼!” 2007년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을 해부한 라자리디스는 매끈한 본체에 수많은 컴퓨터 기능이 내장돼 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통신 네트워크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동영상이나 사진 등의 인터넷 통신을 애플이 실현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애플은 미국 대형 이동통신업체인 AT&T와 독점 계약을 맺고 자사 제품을 급속도로 보급시켰다. 여기다 애플의 아이폰 사용자는 인기 게임 ‘앵그리 버드’도 즐기고, 응용프로그램(앱)을 다운로드도 할 수 있었다. 이는 블랙베리로서는 불가능한 서비스였다.

설상가상, 2007년 구글이 단말기 제조업체에 스마트폰용으로 개발한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무상 보급하기로 하면서 블랙베리엔 더욱 치명타가 됐다. 삼성전자 등 세계적인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안드로이드 OS와 저가 단말기를 투입해 블랙베리의 고객을 낚아채갔다. 2012년엔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우뚝 섰다.

2013년 블랙베리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존 첸은 ‘블랙베리 클래식’을 투입, 블랙베리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쿼티 키보드를 부활시켰다. 키보드형 단말기보다 터치 스크린형 단말기를 중시하던 전임자 토르스텐 하인즈의 방침을 완전히 뒤엎은 결단이었다.

그러나 첸의 생각은 시대착오적이었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넓직한 터치 스크린 방식 스마트폰이 이미 시장을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 가뜩이나 부진하던 블랙베리의 쿼티 키보드 단말기는 찬밥 신세가 됐다. 자체 OS인 ‘BB10’이 애플 iOS나 구글 안드로이드처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었다.

블랙베리는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시장의 대세를 거스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한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블랙베리 마니아임을 자처, 블랙베리를 사용하는 모습이 자주 언론에 노출돼 ‘오바마폰’이란 애칭까지 얻었던 블랙베리. 지난 7월, 미국 상원에서도 블랙베리를 공식 업무용으로 지급하지 않기로 하면서 블랙베리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블랙베리의 점유율은 현재 1%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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