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기 전 최순실 씨의 존재를 알았음을 시인했다. 무려 14시간 동안 이어진 7일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2차 청문회장에서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해 최 씨의 존재를 사전에 알았는지 묻는 여야 국조위원들의 집요한 추궁에도 계속해서 “모른다”고 버텼다. 좋게도 말하고 윽박지르기도 했지만 안 통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 보고서’에 최 씨가 정윤회의 처로 기록돼 있다고 밝히고, 최 씨 관련 설명이 흘러나오는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을 제시했다. 박 의원은 “(박근혜 대선캠프의) 법률자문위원이던 김 전 실장이 최 씨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제 서야 김 전 실장은 “최순실이란 이름은 이제 보니까 내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고 실토했다. 그는 말을 바꾼 데 대해 “죄송하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라고 해명했다. 김 전 실장이 최 씨와의 관계에 이처럼 선긋기를 한 건 ‘직무유기’, ‘범죄 방조’ 등으로 처벌받을 가능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위치에서 최 씨를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묵인함으로서 지금까지 사태를 키운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게 여야 의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김 전 실장이 끝까지 “최 씨를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한 적은 없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편에선 ‘비선실제’, ‘권력 서열 1위’라는 수식어가 붙은 최 씨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증명하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 씨의 측근이었던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과의 질의응답에서 “2014년 제가 문체부 장관을 추천 드린 적이 있다”면서 “최 씨에게 요청을 받고 몇 분을 추천 드렸는데, 계속 재요청을 받아 마지막에 김종덕 장관이 됐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차 전 단장의 대학원 은사다. 차 전 단장은 대통령 연설문과 관련한 최교일 의원의 질의에 대해선 “문화창조나 콘텐츠에 관련해 제 생각을 써 달라는 최순실의 요청을 받고 써준 일이 있는데, 어느 날 대통령의 연설에 그게 몇 부분이 그대로 나왔다”고 밝혔다.
차 전 단장은 또 권역 서열에 대한 생각을 묻는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의 물음에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은 거의 같은 급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씨와 가까웠던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도 ‘서열 1위가 최순실이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고,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을 최 씨의 ‘수행비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