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채널네트워크(MCN)는 쉽게 말하면 동영상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위한 ‘연예기획사’다. 즉 1인 크리에이터들에게 촬영ㆍ기획ㆍ마케팅 등의 매니지먼트를 제공하고 크리에이터 채널에서 얻는 광고 수익을 공유하는 사업자다. 하지만 최근 MCN 비즈니스는 수익모델의 한계로 관리 영역에서 제작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면 조회 수에 따른 광고 수익뿐만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을 활용하는 다양한 사업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글랜스TV’는 콘텐츠를 고민하는 MCN사업자의 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스타트업이다.
글랜스TV가 콘텐츠에 주목하는 이유는 박성조 대표의 배경에서 기인한 바 크다. 박 대표는 “케이블방송에서 콘텐츠를 많이 담당했기 때문에 케이블 방송 PP모델(PP는 케이블TVㆍ위성방송에 채널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제작ㆍ편성해 종합유선방송국(SO)에 제공하는 프로그램 공급자를 의미)에 관심이 많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일보 사업국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케이블 방송국 PD를 거쳐 2003년 ‘에바플러스 미디어’라는 방송 콘텐츠 배급사를 창업하며 콘텐츠 사업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그가 모바일 시대의 PP라고 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콘텐츠 사업자가 된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지난해 10월에 설립된 글랜스TV는 점차 사업의 초점을 ‘브랜디드 콘텐츠(광고주를 위한 콘텐츠)’에 맞춰왔다. 박 대표는 “브랜드 관점의 접근은 어떤 의미에선 필연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방송 콘텐츠를 만들었을 때 배급시장이 있었다”며 “극장이나 TV에서 먼저 공개하고, 그 다음 비디오, 케이블 순서로 단계별로 해 콘텐츠의 희소성이 희석되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표는 “그런데 온라인 플랫폼이 되는 순간, 만든 콘텐츠를 네이버에 올려 버리면 거기서 배급이 끝난다. 돈 내고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이 없어지는데, 프리롤(Pre-roll) 수익 가지고는 돈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려면 후원을 받거나 광고비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왕 그럴 거면 브랜드와 협업을 하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애드버토리얼(기사 형식의 광고)이나 네이티브 광고처럼, 콘텐츠에 광고를 녹임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인지시키는 사업 모델에 집중하게 됐다. 또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기업과 협업함으로써 이들의 니즈를 면밀히 반영한다. 일종의 B2B 콘텐츠 사업인 셈이다.
문제는 ‘어떻게’였다. 박 대표는 ‘옴니채널 전략’을 강조한다. “유통 쪽에서는 오프라인의 매력을 늘리려는 전략을 ‘옴니채널 전략’이라고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대형 쇼핑몰 매장에 대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하는 등 오프라인 매력도를 높여 사는 물건 자체가 아니라 사는 과정의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다시 끌어당기는 전략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오프라인 매력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똑같은 제품도 싸게 살 수 있는 온라인으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같은 논리를 온라인에 적용하면, ‘브랜드 팬덤’이 중요하게 된다”며 말을 이었다. “배우들이 참여하는 한 편의 영화 같은 패션 광고처럼, 소비자의 브랜드 경험을 어떻게 콘텐츠에 잘 녹일까 고민했다”고 그는 말한다. 직접적인 광고가 아니라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에 대한 몰입과 관심을 이끌어 내려고 한 것이다. 브랜드가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쌓아가면 미디어가 된다.
글랜스TV의 대표적 브랜디드 콘텐츠로는 필라테스를 통한 체형 교정 프로그램 ‘저스트 원미닛’이 있다. 현재 네이버 티비캐스트 카테고리에서 3년 넘게 1위를 하는 이 콘텐츠는 누적조회 수가 800만에 이른다. 이 콘텐츠가 인기를 얻자 스포츠의류 ‘카파’가 PPL로 참여 의향을 밝혔다. 글랜스TV는 저스트 원미닛의 포맷을 그대로 활용해 카파 모델 박수진과 12편의 콘텐츠를 더 촬영했다. ‘행아웃’ 콘텐츠는 에너지 음료인 레드불과 협력을 통해 현재 60편이 제작됐고, 내년에 100편이 더 제작될 예정이다. MCN사업자가 만들어 놓은 콘텐츠가 입소문을 타면 광고주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고, 이렇게 제작된 콘텐츠는 더 많은 플랫폼에 배포되는 구조다.
글랜스TV는 직접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외부의 크리에이터 소속사나 연예기획사에 출연 섭외를 하고 크리에이터들을 공급받고 있다. 매니지먼트 사업으로는 내년께 확장을 계획 중이다. 대신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자 매거진 출신 기자들을 기용해 제작에 투입, 매력적인 포맷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재 글랜스TV의 직원 26명 중 제작 관련 인원만 19명이다.
박 대표는 “글랜스TV는 마케팅이나 커머스 사업으로 제약되기보다는 매거진이나 대안 미디어의 성격을 생각하고 있다”고 지향점을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크리에이터들이 게임, 뷰티, 인테리어, 테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늘어나고 있다”며 “앞으로 이들과 각 분야 브랜드들과의 결합을 도와 브랜드 입장에서 양질의 인플루언서들을 확보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박 대표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가 생존 싸움”이라는 그는 “특히 투자자들이 즉각적인 수익을 기대하고 빠른 투자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MCN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는데 거품이 많이 빠졌고, 수익모델이나 성장 모멘텀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시장 흐름이 조성돼 사업이 쉽지 않았다.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된 사업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다행히 최근 몇몇 벤처캐피털들이 콘텐츠 분야에 대한 투자를 다시 넓혀가는 추세라 도움이 됐다.
앞으로 MCN사업의 전망을 묻자 그는 “TV에서 CF 광고를 하던 시대에서, 각자가 페이스북에 콘텐츠 영상을 올리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동시에 B2B 형태의 콘텐츠 사업도 더 많아지고 미디어 커머스 분야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박 대표는 “우리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는 것은 20대 초반의 디지털 네이티브들이다”라며 “또 최근 패션이나 뷰티, 유기농 농산물, 자동차와 술, 요리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가 생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모든 소비자들이 크리에이터가 되고, 동영상 콘텐츠 창작이 대중화될 것”이라고 그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