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하나는 사교육 걱정에 머리가 아프다는 나에게 “뭣하러 자식을 큰돈 들여가며 영어 학원에 보내요? 걔네들 크면 구구단 안 외워도 살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텐데요”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던진다. 오히려 은근히 더 겁이 난다.
경제 주기상으로도 전 세계적으로 전쟁이나 인터넷의 등장과 같은 혁명적 변수가 없는 한 폭발적인 성장은 어려운, 그러니까 저성장이 새로운 기준(new normal)이 되었다. 기업이 활발히 투자하고 국민이 활발히 소비하면 경제가 활기를 찾을 것이란 얘기는 과거 공식이 되어 버렸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가장 시급한 먹고사는 문제인 ‘일자리 문제’는 매우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개인의 고민이자 국가와 기업엔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러니 “대규모 사업을 벌여서 일자리를 얼마만큼 늘리겠다, 그래서 성장률을 얼마나 높이겠다”는 식의 공약을 내놓는 정치인에게 표가 갈 리 없다.
그래서일 것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 그것도 조기대선을 앞두고 출마의 변을 내놓은 이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내놓고 있는 게 ‘기본소득’인 것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6월 “포용적 성장을 위해 기본소득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이래 야권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특히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의 일종인 청년배당도 실시했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연간 50조 원의 재원 마련 구상까지 내놓으면서 기본소득 도입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역시 청년수당 지급을 강행, 중앙정부와 갈등까지 빚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국형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했다. 아동기와 청년기 수당, 성년의 경우 실직과 질병에 대비한 실업부조와 상병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장애수당과 노인기초연금 등 생애주기별로 나눠 기본소득을 주자는 방안이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기본소득제가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기본소득의 가치와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도입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본소득은 개인들에게 가족이나 가구 구성, 다른 소득의 여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지급되는 소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와서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얘기지만, 미국에선 1960년대 닉슨 정권에서도 검토됐고 1980년대 이후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관심이 더 높아졌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받는 태생적 비판의 요소가 있다. 노동을 하지 않는데 소득을 지급한다는 것 자체가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에는 엇나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 사회에선 노동이 의무일 뿐 아니라 유희의 대상이며 자기 계발의 수단이라며 우상화되고 있기까지 하다.
꽤 오래 전이지만 폴 라파르그는 ‘게으를 권리’에서 이를 타파하자고 주장했다. 케이시 윅스 미국 듀크대 교수는 여성학 틀이 기본이긴 하지만 저서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에서 노동이 가장 고결한 사명이자 도덕적 의무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어쩌면 끊임없는 소비를 위해 우리는 너무 오래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며 임금노동의 신화에서 벗어나 인간을 찾자고.
기본소득을 주기 위한 재원 마련은 오히려 문제되는 게 반갑다. 현실성 없으면 포퓰리즘이란 비난만 받겠지만, 이 기회에 기본소득 재원 마련이란 이유로라도 기형적인 조세 및 복지 제도를 개편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다만 개념도 모호했지만 현실화하지도 못한 ‘경제민주화’ 꼴만 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