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시작된 포퓰리즘 광풍이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로 급속도로 퍼지는 모양새다. 브레이크 없는 포퓰리즘에 기존 정치 엘리트는 제물이 되었고, 이들이 추진했던 경제정책도 흔들리면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브렉시트에서 ‘트럼프의 미국’까지=지난해 포퓰리즘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든 계기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였다. 6월 23일 국민투표 당일까지도 브렉시트를 점치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설마 했던’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서 영국을 넘어 유럽 사회는 한순간에 ‘패닉’에 빠졌다. 영국을 휩쓴 포퓰리즘은 대서양을 넘어 미국으로까지 파고들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그 선봉이었다. 트럼프는 자극적인 언행을 얹어 이른바 ‘트럼피즘’을 창조했다. 끊임없는 막말로 논란과 비난을 몰고 다녔지만 동시에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을 조장,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시켰다. 결국 공화당의 쟁쟁한 경선 후보들을 물리치고 공화당 대선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데 이어 미국 대표 ‘정치 엘리트’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꺾고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됐다.
◇배신의 정치, 포퓰리즘의 근원 되다=전문가들이 브렉시트나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희박하게 점쳤던 이유는 바로 이들의 주장이 다소 허황되고 과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경기 침체로 갈수록 팍팍해진 현실에 분노를 느낀 노동자들은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현실에 대한 분노는 기성 정치에 대한 배신감으로 이어졌다. 정치 엘리트나 월가는 ‘부의 낙수 효과’를 주장했지만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골이 깊어졌다. 노선은 트럼프와 달랐으나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99%를 위해 1%의 특권을 빼앗아오겠다’는 일관된 샌더스의 주장에 유권자들은 환호했다. 유럽 정치 엘리트는 모두가 잘사는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했으나 유럽연합(EU)은 ‘잘 사는 나라만 더 잘 산다’ 이미지를 버리지 못했다. 유럽이 독일과 프랑스 등 ‘핵심국’과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남유럽 중심으로 ‘주변국’으로 나뉘게 됐다. 유럽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된 남유럽이나,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지탱해야 하는 서유럽의 불만은 커져갔다.
◇‘세계의 트럼프들’ 활개, 한국까지 확산?=배신의 정치를 목도한 유권자들은 포퓰리스트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투표를 통해 기성정치를 심판하기 시작했다. 이미 영국 미국 이탈리아 정치 엘리트들은 분노한 국민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포퓰리즘의 역풍을 맞고 정치 무대 밖으로 나와야 했다.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의 확산은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올해 4월 프랑스 대선과 10월 독일 총선 등 유럽의 크고 작은 투표가 예정된 가운데 ‘유럽판 트럼프’들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 특히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4연임 도전 성공 여부는 포퓰리즘 저지선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탄핵안을 가결한 한국에서도 포퓰리즘이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브렉시트와 트럼프 현상,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낙마의 계기를 제공한 포퓰리즘이 한국까지 덮쳤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도 이재명 성남시장과 같은 정치적 ‘아웃사이더’가 수혜를 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 또 다른 배신의 정치의 시작?=일단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언뜻 포퓰리즘의 승리인 것처럼 보인다. 브렉시트 때도, 미국 대선 때도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금융시장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았다. 미국 증시는 대선 이후 사상 최고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 확산과 그로 인한 증시 랠리에 우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는 “시장은 (트럼피즘이 주는) 행복감에 도취된 상태”라면서 “시장은 당장 1월부터 숙취에 시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이 트럼프의 재정 확대, 감세, 규제완화 등의 경제 공약에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책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시장은 물론 경제에 찬물을 끼얹게 될 수 있다고 꼬집는다. 트럼프가 대선 기간 월가 인사들을 비판했지만, 정작 당선 후 월가 출신으로 내각의 요직을 채운 것도 이미 배신의 시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월가만 노났다’는 비아냥 섞인 비판도 나온다. 최근 유럽권에서 득세하는 극우 정당들, 이들 모두 부진한 경제를 기성 정치 엘리트들의 무능을 원인으로 돌리고 있지만, 이들 역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