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에 자동차·철강 산업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당분간 우리 증시에서 이들 업종의 투자심리 위축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시대가 개막하면서 정책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차·철강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24일 미국 내 모든 송유관 건설에 들어가는 철강재를 미국산으로 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상무부는 6개월 내에 실행계획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강관을 생산하는 국내 철강업체의 해외 수출 물량 중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에 달한다. 현대제철, 세아제강 등 우리 철강업체의 미국 송유관 수출 규모는 지난해 물량 기준 47만 톤, 2900억 원 수준이다.
트럼프가 미국 인프라 재건에 1조 달러를 투자하는 공약이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철강업계는 갑작스런 한파를 맞았다. 국내 최대 강관업체 세아제강 주가는 연초 20% 상승했지만, 트럼프가 미국산 철강재 사용을 강조하면서 6거래일 동안 10% 이상 하락했다. 변종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철강업계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투자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다만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그대로 실행될지 여부가 아직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위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있다. 박성봉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행정명령은 충분한 법률 및 경제적인 검토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여지가 크다”면서 “주요 수출국 및 미국내 수요가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상무부에서 현실적인 계획서를 제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완성차·부품 업계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트럼프는 무역 불균형을 불러온 대표 산업으로 자동차 업종을 지목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추진 의사를 밝힌 데 이어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탈퇴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미국 수출 비중이 큰 현대·기아차에 불똥이 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은 53% 정도에 불과해 포드(93.4%), 혼다(80.0%) 같은 경쟁 기업과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기아차는 멕시코에 공장을 두고 있어 ‘국경세 폭탄’ 우려가 크다. 멕시코에서 연간 90만 톤의 자동차 강판을 생산하고 있는 포스코도 대부분 현지 완성차 업체를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는 만큼 직·간접적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한미 FTA 재협상이 현실화할 경우 자동차 부문은 ‘0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했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으로 수출환경이 악화할 것”이라며 “자동차 산업은 대미 흑자 규모가 큰 만큼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리스크’에 기대치를 밑도는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이 겹치면서 올 들어 현대차와 기아차 주가는 각각 9.0%와 9.1% 하락했다. 현대모비스(10.8%) 역시 저조한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현대위아(-18.3%)는 6일 52주 신저가를 재경신했다. 증권사들은 이들 기업의 목표 주가를 줄줄이 하락하며 시장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가 지난 3일 금융 규제 법안인 ‘도드-프랭크법’을 재검토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은행·증권 등 금융업종은 상승 동력을 얻는 모양새다. 이 법은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금융회사의 위험자산 투자 규제와 감시·감독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안현국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규제 완화에 따라 영업과 수익성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향후 12개월 예상 자기자본이익률(ROE) 전망치가 꿈틀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