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키는 무역·환율전쟁의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주요 외신들이 잇따라 한국을 거론하면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취임 직후 12개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무역전쟁을 예고했다. 그는 또 중국과 일본이 자국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 부당한 이익을 취했다며 맹렬히 비난해 환율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독일도 낮은 유로화 가치를 통해 무역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며 공격대상이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13일(현지시간) 트럼프가 지금까지는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던 한국과 인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이 다음 무역전쟁의 대상이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아시아 국가가 미국에 대해 유독 막대한 규모의 무역수지 흑자를 내고 있어 트럼프가 공격대상에서 이들을 제외하지 않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강조했다.
트럼프 무역정책의 선봉장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과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미국의 낮은 경제성장세의 주범으로 대규모 무역적자와 불공정한 무역 관행 등을 꼽으면서 칼을 갈고 있다.
여전히 가장 큰 핵심 타깃은 중국이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 가운데 중국은 3470억 달러(약 399조 원)로, 전체의 46.2%를 차지했다. 일본은 689억 달러로 2위였다. 한국은 277억 달러로 미국과의 교역에서 8번째로 많은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의 무역흑자 중 80%가 자동차 제조 분야로부터 나와 제조업 근로자 일자리를 중시하는 트럼프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도와 말레이시아 등도 200억 달러가 넘는 흑자를 냈고 베트남은 대미 무역흑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5%에 이른다.
한편 한국은 무역은 물론 환율 부문에서도 트럼프의 공격에 직면할 위기에 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환율조작의 주범은 일본과 중국이 아니라 한국과 대만, 더 나아가 싱가포르라며 트럼프는 엉뚱한 곳을 조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FT가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8%에 육박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각각 3%에 불과하다. 대만은 그 비율이 15%에 이르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19%로 한국, 대만보다도 훨씬 높다. 한국과 대만 등이 외환시장 개입을 직접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런 지표는 이들 국가가 대외 수요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환시 개입의 효과를 나타낸다고 FT는 설명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 시절 재무부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브래드 세처 미국외교협회(CFR) 선임 연구원은 “내가 유일하게 아는 사실은 한국과 대만이 자국통화 평가절상을 끊임없이 막아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재무부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려면 해당 국가가 자국과의 무역에서 2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내고 GDP 대비 경상흑자가 3% 이상이며 최근 12개월간 외화 매입이 GDP 대비 2%를 넘어야 하는 등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FT는 트럼프가 환율조작국으로 특정 국가를 지목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한국, 대만은 미국의 지정학적인 고려에 기댈 수 있지만 트럼프가 명확한 답을 줄 때까지는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