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곳곳을 뛰어야 할 재계 총수들의 발이 석 달째 묶여 있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맡은 특검이 지난해 12월 중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주요 대기업 총수를 출국 금지한 탓이다. 당장 중국의 ‘사드 보복’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고, 대형 인수·합병(M&A)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20일 재계 한 관계자는 “도주 우려가 없는 대기업 총수를 장기간 출국 금지로 묶어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번 달 내에는 출금 조치가 풀리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특검에서 수사를 넘겨받은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출금을 해제할지, 연장할지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은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해 1개월 이내 기간을 정해 출국을 금지하고 필요한 경우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다. 지난 18일 최태원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소환조사를 받는 만큼 최 회장에 대한 추가 소환 통보가 올 수도 있다. 검찰은 최 회장의 조사 신분에 대해 “일단 참고인”이라고 하면서도 피의자 전환 가능성에는 여지를 뒀다.
총수들의 출금이 장기화하면서 기업 경영 역시 타격이 크다. SK하이닉스는 일본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SK이노베이션 역시 중국 석유회사 상하이세코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지만 낙관하긴 어렵다. 당장 최 회장은 23~26일 중국 하이난섬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에도 참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포럼은 중국 재계는 물론 정·관계 인사, 글로벌 기업 총수들과 폭넓게 교류할 수 있는 자리다.
롯데는 사드 부지 제공 이후 중국 사업 전면 중단 위기에 빠졌지만, 신동빈 회장은 친분이 있는 중국 고위층과 만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국내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의 출국금지 장기화는 대한민국 경제의 손발을 묶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기업 활동을 고려해 하루 빨리 출금 조치를 풀어야 한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