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정의 인사이트] 사표(死票)는 없다

입력 2017-05-0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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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도대체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뽑아야 하나?” 요즘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정치부 기자에게 물어보면 뭔가 뾰족한 답이 나올까 했을까. 19대 대선은 촛불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과 그로 인해 치러지는 초유의 ‘보궐 선거’이다. 그만큼 다음 대통령은 더 잘 뽑고 싶었을 테다. 난 그저 “소신껏 뽑으라”고 한다. 실현 가능하고 꼭 필요한 공약을 제시한 후보, 또는 어수선한 대한민국의 통합과 협치를 이뤄낼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진 후보를 말이다.

하지만 왠지 선거에서는 소신을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혹시 자신이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다. 괜히 안 될 것 같은 후보에게 표를 던져 내 표를 죽은 표로 만들고 싶지도 않다. 이른바 ‘사표(死票) 방지’ 심리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밴드왜건(bandwagon)’ 효과가 있다.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현상과 마찬가지로, 선거 때마다 대세론 혹은 강한 쪽으로 유권자의 지지가 급격히 쏠리는 현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될 만한’ 후보를 찍어 줘야 한다는 편승 효과이다.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유권자들의 행위에도 사표를 방지하고픈 심리가 반영돼 있다.

탄핵 정국 이후 갈 곳을 잃은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이 반문(반문재인) 심리와 맞물려 당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보수진영 후보보다는 그나마 중도 성향을 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몰린 데에도,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토론회와 정책공약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음에도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은 데에도 비슷한 기저가 작용한다.

하지만 자신의 한 표가 대통령 당선인의 표가 되지 못한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표 방지를 위한 투표가 전략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소신투표는 다당제 체제하에서 건전한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루는 데 충분한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진보정당에 주는 표만큼 사회가 개혁되고, 보수정당에 주는 표만큼 민주주의의 견제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최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독주 체제로 다시 전환되면서 진보 진영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보수 진영에서는 유승민 후보에게 소신투표를 하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심 후보는 EBS·한국리서치가 4월 29~30일 이틀간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1.4%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두 자리 숫자를 돌파했다. 유 후보도 5.7%의 지지율을 보이면서 선거운동 초반 2~3%에서 최근 5%대에 안착했다. 5차례의 TV토론에서 정책적 내공을 인정받은 이들의 지지율 상승은 사표 우려를 떨친 소신투표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5·9 장미대선이 이제 딱 7일 남았다. 이제는 대한민국 미래 지도자로 누구를 선택할지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이다. 선거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자들은 정치인들이 아닌 바로 우리 유권자들이다. 소신껏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끝까지 밀어 주려는 국민들이 많아질수록 새 정부에서 협치와 연정이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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