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2014년 아깝게 놓친 미국 이동통신업체 T모바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10일(현지시간) 손 회장은 실적발표 기자회견장에서 다시한번 T모바일 합병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미국 이동통신업계의 재편에 대해 열린 자세로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라며 의욕을 내보였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이자 미국 이동통신업계 4위인 스프린트와의 합병을 통해 현지 업계 재편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3위인) T모바일US는 가장 유력한 (합병) 후보 업체 중 하나이지만 다른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소프트뱅크는 2013년 스프린트를 총 2조 엔에 인수하며 미국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손 회장은 T모바일도 같이 인수해 AT&T와 버라이존커뮤니케이션 등 미국 양대 기업에 대항하는 제3의 세력으로 부상하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당시 행정부 하에서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와 법무부가 반독점을 이유로 스프린트와 T모바일의 합병에 제동을 걸면서 손 회장의 장밋빛 꿈도 물거품이 됐다. 이후 스프린트는 실적 부진이 계속되며 모회사인 소프트뱅크의 실적마저 위협하는 상황, 한때는 매각을 검토했지만 손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대선에서 미국의 정권이 교체되며 난류의 경계점이 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FCC 위원장에 규제완화론자인 아지트 파이를 지명하면서 행운의 여신이 손 회장을 향해 미소짓게 된 것. 손 회장은 이 기회를 놓칠새라, 작년 12월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취임 직전인 트럼프를 만나 미국에 500억 달러를 투자해 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손 회장이 스프린트와 T모바일의 합병 허가를 이끌어내려 환심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손 회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AT&T와 버라이존이 2강으로 남아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론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스프린트의 업계 재편은 중요한 테마이며 나도 적극 참여하겠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4월 말 새로운 전파 입찰이 끝나 동종 업체간 재편 협상이 가능해졌다.
다만 손 회장의 인수 후보는 T모바일 만이 아니다. 현지에서는 CATV 업체인 차터커뮤니케이션스 등도 후보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손 회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며 휴대폰과 방송의 결합도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소프트뱅크가 스프린트를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손 회장은 “스프린트는 성장 엔진”이라며 매각 의사가 전혀 없음을 강조했다. 오히려 재편을 통해 미국 이동통신 사업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스프린트는 2.5기가(기가=10억)헤르츠 대역의 고주파수 대역을 선진국에서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10일에는 스프린트와 소프트뱅크가 2.5기가 헤르츠 대역의 전파를 5G에 사용하는 방향으로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과 기술 제휴한다고 발표했다. 5G의 선행은 재편을 주도하는 비장의 카드가 될 수도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