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비둘기파적 색채를 되돌리면서 금융시장이 환호했다.
옐런 의장은 12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회에 출석해 통화정책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연내에 약 4조5000억 달러(약 5144조 원)에 달하는 연준의 자산 규모 축소에 착수하고 기준금리 인상은 완만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옐런은 현재의 미지근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연준의 정책 방향이 바뀔 수 있다고 시사하는 등 원래의 ‘비둘기파’적인 성향을 강하게 내비쳤다.
옐런 의장은 “경제 확장을 유지하고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인 2%에 도달하도록 하려면 향후 수년간 점진적인 추가 금리인상이 적절할 것”이라며 “그러나 경제가 과열되지도 둔화하지도 않는 중립 금리는 현재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연준이 금리를 그렇게까지 많이 올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자산규모 축소와 관련해서는 “경제가 예상대로 움직인다면 연내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그 후 질의 응답에서는 “비교적 일찍”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에 시장에서는 연준이 9월 개최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산 축소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고조됐다.
연준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 탈출을 위해 국채와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대량으로 매입해 자산이 위기 전 9000억 달러에서 4조5000억 달러로 확대됐다. 양적완화가 끝난 이후에도 만기를 맞은 보유 채권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자산 규모를 유지해왔는데 이제 이를 줄여나가면서 금융정책 정상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옐런은 보유 자산을 단계적으로 축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면서 시장의 동요를 차단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옐런은 “앞으로 몇 년 안에 물가상승률이 2%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은 시기상조”라면서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계속 부진하면 정책을 조정할 수 있다”고 유연한 정책 접근을 강조했다.
최근 ‘매파’ 성향을 보이던 옐런이 이날 청문회에서 ‘비둘기파’로 복귀하면서 시장은 안도했다. 뉴욕증시 다우지수는 3주 만에 사상 최고치를 다시 갈아치웠고,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4bp(bp=0.01%포인트) 떨어진 2.32%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앞서 옐런 의장은 지난달말 니콜라스 스턴 브리티시아카데미 회장과의 대담에서 “우리 시대에 또 다른 금융위기가 다시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제에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다.
한편 내년 2월 옐런의 의장 임기가 끝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옐런을 연임시킬 가능성은 제로(O)인 것으로 알려졌다. 옐런의 임기는 이제 길어야 6~7개월 남은 셈이다. 옐런의 후임으로는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수장이 유력하다. 이날 공화당 소속의 숀 더피(위스콘신) 의원이 “이번이 연준 의장으로서 마지막으로 의회에 서는 자리가 될 것인가”라고 묻자 옐런 의장은 “내 임기는 2월에 만료되기 때문에 그렇게 될지 모른다”고 답했다. 또 옐런 의장은 “나는 확실히 (내년 2월까지인) 내 임기를 채울 것”이라며 “이 시점에서 연임 여부 질문에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옐런은 13일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한다. 상원에서도 이날과 비슷한 기조의 발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