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서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세안 창립 50주년인 올해, 어느새 아세안이 중국을 대체할 핵심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은 올해로 발효 10주년을 맞았다. 아세안은 한국의 교역시장으로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국내 기업들은 ‘포스트 중국’을 찾아 아세안 시장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의 대(對)아세안 수출 규모는 작년에 1180억 달러(약 132조9270억 원)를 기록했다. 투자 규모는 350억 달러, 건설 프로젝트는 88억 달러에 달한다.
아세안은 2015년 기준으로 인구가 6억3000만 명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6위로 높은 잠재 성장률이 특징이다. 아세안은 2007년 이후 연평균 5%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해왔다. 2030년까지 경제 규모에서 세계 4위를 목표로 삼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아세안 시장에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기업이 아세안에 몰리는 또 다른 배경으로는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 보복으로 대안 시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3월부터 사드 보복 조치를 취했다. 유통업계는 물론이고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체들도 후폭풍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불이익을 당한 기업은 롯데다. 롯데는 경북에 있는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의 첫 번째 보복 대상이 됐다. 중국에서 큰 타격을 입은 롯데는 아세안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전부터 롯데는 아세안 지역에 투자 확대를 노리고 있었다.
작년 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롯데마트 등을 둘러보고 추가 투자 사업을 검토했다. 롯데는 2020년까지 하노이에 7만3000㎡ 규모의 복합 쇼핑몰을 건설할 예정이다. ‘롯데몰 하노이’는 극장, 호텔, 백화점, 사무실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며 롯데는 3300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는 베트남 호찌민에도 에코 스마트시티를 조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2021년까지 2조 원을 들여 백화점, 쇼핑몰, 극장 등을 세울 예정이다. 롯데케미칼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생산 공장을 둔 동남아 대표 석유화학회사인 타이탄을 2010년 인수했다. 이를 발판 삼아 동남아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롯데 외의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도 아세안 시장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아세안의 주요 시장인 베트남 하이퐁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두 업체가 베트남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설립함에 따라 관련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도 현지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LG화학은 지난달 말 베트남 하이퐁시 트란두 공업지역에 편광판 생산 공장 설립을 베트남 공장으로부터 허가받았다.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편광판은 LG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에 공급될 예정이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중국에 이어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베트남에 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만 생산해온 OLED 패널과 모듈을 베트남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LG그룹은 LG디스플레이, LG전자, LG화학 등 수직계열화를 베트남에서 실현할 야욕을 보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LG화학이 베트남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CJ제일제당은 내년 7월까지 베트남 호찌민에 700억 원을 들여 통합 식품 생산 기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이번 생산기지를 완공해 연간 6만 톤의 물량을 해당 공장에서 소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한식 대표 브랜드인 ‘비비고’를 중심으로 베트남과 동남아 전역에 ‘K-Food’를 전파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부터 베트남 식품업체 3곳을 인수했다.
전문가들은 아세안이 유망한 시장이긴 하지만 중장기적인 투자 관점에서 신중한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세안 국가 중 일부는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 장벽이 여전히 높고, 가시적인 성장보다 잠재적인 성장이 지배적인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