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는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신흥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격돌하고 있다며 ‘KADEN(카덴, 가전·家電)’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일본 기업들도 새로운 성장시장인 카덴 시장에서 틈새를 찾아 역습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일본 스타트업들은 대형 가전업체들의 존재감이 미미해진 가운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초점을 맞춰 파격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 가전업계는 2011년 ‘에코포인트 제도’가 종료되면서 암흑기를 맞았다. 이 제도는 에너지 절약 성능이 우수한 TV·냉장고·에어컨 등을 구입하면 가격의 일정 부분을 포인트로 적립해주는 제도로 소비자들은 적립된 포인트를 모아 다른 제품 구매에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종료되면서 가전기업들은 실적 부진은 물론이고 거센 구조조정에 직면해야 했다. 연구·개발(R&D) 투자 대부분은 다기능화와 소형화 등으로 안정적인 수익이 기대되는 기존 사업으로 집중됐다. 이에 개발자들은 새로운 것에 도전할 기회도 의욕도 모두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침체된 일본 가전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대기업들의 의욕이 꺾인 틈을 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능과 디자인으로 내세운 신흥기업들이 대두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존 청소기와 달리 물로 침대나 소파 등을 세척할 수 있는 청소기 ‘스위틀(SWITLE)’이다. 이 제품은 청소기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물을 분사해 오염물질을 빨아들이는 방식이다. 노즐을 대기만 하면 오염이 감쪽같이 사라져 일본 가전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올 4월 출시해 8월 말까지 2만 대가 팔렸다.
스위틀을 판매하는 시리우스는 원래 TV 판매업체였으나 스위틀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7월부터는 대형 가전유통업체로 사세를 확장했다. 사실 이 회사는 직원이 겨우 8명에 불과한 스타트업으로 R&D 부문도, 제조설비도 없는 팹리스 기업이다. 이런 작은 스트트업이 이미 포화된 생활가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건 발상의 전환과 신속한 결정력 덕이다.
스위틀은 세상에 없던 제품이었다. 그러던 것을 2015년 산요전기 출신 경영진이 히로시마 현에 사는 한 발명가의 제안을 받아들여 즉각 사업화를 결정, 시제품을 내놓은지 1년 만에 양산을 결정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양산을 위한 자금 조달은 크라우드 펀드와 정부의 보조금, 여기에 은행에서 2억 엔(약 20억 원)의 대출을 받아 마련했다. 이처럼 일사천리로 사업이 진행된 건 벤처기업 특유의 신속한 결정력이 크게 한몫했다. 원래 이 제품은 반려동물이 있거나 간병이 필요한 가족이 있는 세대를 위해 발명됐으나 시판하자마자 의외로 반응이 좋아 순식간에 시장에서 입소문을 탔다.
일본 신흥기업들은 상품 개발 뿐 아니라 가격 파괴로도 기존 가전 대기업들을 자극하고 있다. 대형 할인점 체인 돈키호테의 경우, 파격가로 고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돈키호테는 가장 인기 있는 TV 모델인 50인치 4K TV를 대기업 제품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팔고 있다. 올 6월에 출시한 첫 제품은 불과 1주일 만에 3000대가 팔려 8월에는 추가 이벤트를 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4K TV 뿐 아니라 액션 카메라와 전기밥솥, 청소기, 에어컨 등 다양한 가전을 정상가보다 대폭 할인된 가격에 선보이고 있다.
돈키호테가 파격가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은 중국 협력공장 등 외부 개발 파트너의 존재 덕분이다. 돈키호테에서 가전 개발자는 10명 남짓이지만 이들은 장르와 기능 선정 등 상품 기획으로 특화돼 있다. 설계와 시제품 개발 같은 R&D 업무 대부분은 외주를 줘 비용을 철저히 삭감한다. “싼 게 비지떡”이란 선입견을 깨고 철저히 기능 위주에 주력한 게 통한 것이다.
NB는 스타트업들의 대두와 가격 파괴 혁명이 자극제가 되어 일본 가전 대기업들도 비로소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