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인데, ‘학생’이라는 말에는 누가 뭐래도 과도한 열정과 과도한 행동이 배어 있다. 오늘의 학생에게는 대입(大入)을 앞둔 과도한 피로와 과도한 학습만 있을 뿐이지만 ‘학생’이라는 말에는 지금도 피가 들끓는 분노가 숨겨져 있다.
역사의 이름 그 안에 미미하게 흐르고 있지만 1929년 10월 30일 광주중학교의 일본인 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으며 이유 없이 희롱한 것이 발단이었던 그 싸움은 학생들의 애국심을 기리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 주기 위해 제정한 ‘학생의 날’로 승화됐다.
11월 3일이 그렇게 의미 있는 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어느 지방대학의 강의에서 이날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는데 손을 든 학생은 없었다. 있기는 있는데 아는 사람이 드문 학생의 날은 오늘의 애국심과 다르지 않다. 나는 가끔 나에게 되묻는다. “너는 애국심이 있느냐? 있다면 몇 도나 될 것 같으냐?” 50도? 60도? 아니 안으로는 100도라고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겨우 30도나 될지 모른다는 부끄러움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오늘, 현실적인 입장에서 애국(愛國)은 과연 누가 하는 것인가? 세상을 향해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있긴 있는데 어딘가 숨겨져 있는 것이 내 애국심이지만 날마다 애국을 팔면서 자기이욕(自己利慾)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도 자주 본다. 그런 사람일수록 애국과 국민을 쉽게 입으로 판다.
그러나 어버이날에 부모님에게 꽃 한 송이를 바치듯 학생의 날에 학생에게 꽃 한 송이를 바치는 사랑을 모두 한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은 1919년 유관순의 기억 때문에 더더욱 1929년의 10대들의 싸움에 예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때리고 그래서 가두고 그래서 난폭해졌을 것이다. 그것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해서 만든 것이 ‘학생의 날’이었다.
우리는 한때 대한민국이라는 자기 나라 이름을 애타게 부른 적이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별로 크게 잘해 준 것도 없는 자기 나라 이름 ‘대한민국’을 가슴 터지게 부른 적이 있다. 시청 앞을 광화문을 뜨겁게 달구던 그 젊은이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들이 오늘 학생의 날에 그리워진다.
지금 우리가 그리운 것은 건강한 분노와 성실하고 진실한 애국이다. 용감하고 빛나고 아름다운 영원한 애국이야말로 한걸음 더 나가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기에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큰 화합을 다져야 할 것이다.
오늘은 우리도 학생이다. 어린이도 노인도 모두 학생이다.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오늘 가짜 감정의 애국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자신의 명예를 위한 분단장 같은 애국을 과감히 씻어 버리고 애국의 광장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이 가을의 대향연(大饗宴)이 그리워진다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학생의 날의 서러움은 10대들만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의 서러움이었기 때문이다. 자문(自問)하자. 지금 우리는 어떤가? 무슨 무슨 날만 정하는 게 아니라 그 의미 그 뜻을 새기고 행동하는 정신의 부활이 필요한 시기 아닌가. 오늘은 우리 모두 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