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상장사 10곳 중 8곳 이상이 사업보고서에 경영분석정보를 충실히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금융감독당국 조사 결과 드러났다. 또 국내와 미국에 동시 상장된 기업들이 사업보고서 내용에서 차이를 보여 투자자간 정보 불균형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식요건만 맞춘 사업보고서 = 금융감독원은 국내 시총 상위 대형사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동시 상장사 등 51사의 2016년도 사업보고서 중 ‘이사의 경영진단 및 분석의견(MD&A)’ 기재 실태를 점검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MD&A는 회사 경영진이 영업실적, 재무상태, 미래 변수의 발생가능성 등을 분석해 관련 의견을 사업보고서에 서술하는 제도다.
점검 내용은 개요, 재무상태 및 영업실적, 유동성, 자금조달 등 4개 핵심항목으로 기재 여부와 내용 충실도를 살폈다. 점검 대상은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시총 상위 30사 중 신규 상장 및 우선주 상장사 2사를 제외한 후 순위권 밖 회사 중 미국 동시 상장사 3사를 포함해 선정했다. 여기에 코스닥 시총 상위 상장사 20사를 더했다.
점검결과 대상 기업 51곳의 형식요건 충족도는 높은 편이었으나, 내용 충실도는 전반적으로 매우 미흡했다. 내용 충실도 면에서 ‘부실’ 평가를 받은 회사는 42사로 전체 82.4%를 차지했다. 기재 내용이 ‘충실’한 회사는 5사, ‘보통’인 회사는 4사에 그쳤다.
시장 규모별로는 코스피 상장사가 코스닥 상장사에 비해 내용 충실도 면에서 나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 내용 충실도 면에서 ‘보통’ 이상을 받은 회사 9곳 전부가 코스피 상장사로 집계됐다.
◇국내ㆍ미국 사업보고서 내용 차이 = 특히 국내와 미국 증시에 동시상장된 상장법인들의 경우 국내와 미국 사업보고서상 MD&A 기재 비중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동시상장 법인 8곳의 미국 사업보고서 상 MD&A 기재 비중은 평균 20.5%, 분량은 34페이지에 달했다. 반면 국내 기재 비중은 평균 2.6%, 분량은 13페이지에 불과해 기재 비중이 8배 넘게 차이가 났다.
세부 기재 내용에서도 미국에 보다 충실한 MD&A 공시를 한 것으로 드러나 미국 투자자와 국내 투자자간 정보 불균형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가령 재무상태 및 영업실적의 경우, 한국 보고서에는 2페이지에 걸쳐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사업부문별 실적을 요약 형태로 기재하고 단순 증감 내역만 표시했다. 반면, 미국 사업보고서에는 20페이지 분량으로 전년도 대비 해당년도의 주요 계정과목별, 사업부문별 변동현황과 원인을 자세히 기술하는 식이다.
개별 회사 중 국가별 대응이 가장 달랐던 곳은 POSCO로 국내ㆍ미국 사업보고서간 기재 비중 차이가 27.7%포인트에 달했다. 다음으로 KT, LG디스플레이, KB금융, SK텔레콤, 한국전력, 우리은행, 신한지주 순으로 차이를 보였다.
◇상장사들, 기재강화 공감 못해 = 문제는 증시 상장사들이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이 MD&A 작성․보고 프로세스 및 중요도 인식수준 관련 설문조사를 51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 대답을 제공한 45사 중 90%가 기재 강화가 불필요하거나 시간적 제약 등으로 어렵다고 전했다.
기재 강화가 불필요하다고 밝힌 곳은 29사로 전체 64.4%를 차지했다. 어느 정도 필요하나 시간적 제약 등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고 밝힌 곳도 11사(24.4%)에 달했다.
MD&A 관련 내용을 재무부서가 아닌 공시부서에서 작성하는 등 내부통제도 미흡한 수준인 것으로 보고됐다.
아울러 국내ㆍ미국 동시상장법인의 경우 사업보고서상 MD&A 작성 분량이나 내용 충실도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지만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상장사 공시 강화 유도 = 금감원은 정기적으로 실태 점검결과를 발표하고 모범사례를 전파해 회사들의 자율적인 공시 강화를 유도할 방침이다. 아울러 올해 2017년도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 시총상위 대형 상장사와 국내ㆍ미국 동시상장법인들을 대상으로 기재 실태를 재점검할 계획이다.
특히 경영진이 기존에 인지한 사항이 투자자에게 대규모 손해를 발생시킨 원인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MD&A에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될 경우, ‘중요사항 미기재’로 제재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점검대상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점검대상을 잠재리스크가 있는 특수․취약업종으로 확대하고 점검을 정례화하고 기업 우수사례도 계속 발굴해 전파한다.
정형규 금감원 기업공시국장은 “상장법인은 사업보고서 MD&A 작성시 금감원의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을 참고해 형식적 기재 누락 없이, 경영진 시각의 ‘분석의견’을 ‘서술식’으로 충실히 기재할 수 있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