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탈로 앞날이 불투명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드디어 3월 출범한다. 일본과 캐나다 등 TPP 11개 회원국이 오는 3월 칠레에서 ‘포괄·점진적 TPP(CPTPP)’ 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2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TPP 협상이 마무리됐다는 것을 기쁘게 발표한다”며 “이 협정은 캐나다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며 무역 확대를 촉진할 것”이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협상을 주도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감사도 표시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년 전 TPP 탈퇴를 선언한 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TPP 탈퇴를 선언하고 나서 일본 등 다른 회원국들은 이를 유지하기 위한 협의를 지속했다. 지난해 11월 이들 회원국은 미국이 없어도 TPP를 이행한다는 원칙에 합의했으며 이름도 CPTPP로 변경했다.
CPTPP는 기존 TPP 협정의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해 최종적으로 교역물품의 95%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간다. 그러나 기존 TPP 조항 가운데 지식재산권과 환경, 투명성 등 미국이 적극적으로 포함하기를 주장했던 20개 조항에 대해서는 시행을 보류한다.
11개 회원국은 이날 일본 도쿄에서 회동을 마치고 오는 3월 8일 칠레에서 협정 서명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캐나다가 자국 문화산업 보호를 이유로 막판까지 이견을 보였다. 일본 측 협상 담당자인 모테기 도시미쓰 경제재생담당상은 “회원국들이 캐나다 이슈에 대해서는 협정이 발효되고 나서 따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또 “11개국 모두가 참여한 이번 결정은 일본과 환태평양 지역의 미래를 위한 획기적인 일”이라며 “여전히 미국에도 문은 열려 있다. 우리는 이 사안의 중요성을 다시 설명할 것이며 미국이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베트남도 노동 관련 규정 위반에 무역제재를 허용하는 조항에 난색을 표시했으나 이 이슈도 캐나다 건과 마찬가지로 본 협정 서명과는 별도의 추가 협정으로 처리될 예정이다.
당초 TPP 참가국의 경제규모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0%에 달했지만 미국의 이탈로 그 비중은 약 13%로 축소됐다. 여전히 TPP 국가들의 교역액은 전 세계 무역에서 15%의 비중을 차지하는 거대한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포럼 마지막 날인 26일 연설할 예정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캐나다를 포함한 11개국이 협상 타결에 이른 것은 ‘미국제일주의’를 내걸고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강화한 트럼프 정부에 가장 큰 견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세이프가드 조치에 공식 서명했다. 모테기 경제재생담당상은 “세계 일부가 현재 보호주의로 향하고 있다”며 “CPTPP는 이런 현상을 극복할 주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FT는 CPTPP가 한국과 환태평양국가가 아닌 영국 등 다른 나라가 합류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고 있으며 무역협정에 높은 법적 기준을 세워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TPP 회원국인 캐나다, 멕시코가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 재협상을 어떻게 진행할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CPTPP 협정이 향후 나프타 협상에 틀을 제공할 것이라며 미국이 참여하든 그렇지 않든 지역별 FTA를 통해 자유무역주의가 더욱 진전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