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무역전쟁에 이어 통화전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 도착하자마자 기자회견을 열고 약달러 찬가를 불렀다. 므누신 장관은 “약달러는 무역과 기회 면에서 미국에 유리하다”며 “달러화의 단기적 가치는 우려 사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이 통화 긴축 노선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서 환율 방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달러 약세를 선호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히며 약달러 현상을 유도했다.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내건 트럼프는 무역적자 해소를 최대 과제로 삼고 있는데 강달러는 무역 적자를 심화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달러화 가치는 이날 최근 하락세에 더해 므누신 장관의 발언에 영향을 받아 사흘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뉴욕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ICE달러인덱스는 이날 전일 대비 1% 떨어진 89.21을 기록했다. 달러인덱스가 90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14년 말 이후 처음이다.
브라운브라더스해리먼의 마크 챈들러 애널리스트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이후로 강한 달러를 옹호하는 발언에서 벗어난 재무장관은 없었다”며 “그런데 이번 므누신의 발언은 미국 정책 당국자들이 실제로 달러 약세를 지지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챈들러 애널리스트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세이프가드 발동을 결정했는데 이를 본격화하면 달러 약세 발언은 더 큰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고 관측했다.
달러 약세는 미국 수출업계에는 호재다. 해외 여러 제품과 경쟁 시 가격 경쟁력 면에서 도움이 된다. 반면 무역 상대국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다른 나라로하여금 환율 방어 움직임을 부추길 수 있다.
일각에서는 약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훼손할 수 있어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또한, 약달러는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의 수익률을 의도치 않게 떨어트릴 수 있다. 므누신 장관의 발언 직후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이 CNBC에 출연해 “므누신이 달러 약세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보스에 온 로스 장관은 이외에도 “무역전쟁은 매일 벌어지고 있다”며 “불행하게도 매일 규칙을 위반하며 불공정한 이득을 취하려는 다양한 당사자들이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장벽을 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것으로 미중 간 무역전쟁의 긴장을 높이는 발언이다.
므누신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미국우선주의를 향한 세계의 반감을 의식하는 태도를 보였다 .므누신 재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경제 성장률 3%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올해 다보스 포럼에 파견된 대표단 규모는 사상 최대”라며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와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므누신 장관은 미국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무역을 위해 절대적으로 헌신했다는 주장도 반복했다. 동시에 미국의 경제 성장이 세계 경제 전체의 성장에 도움이 되며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정책이 세계 경제의 성장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그는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미국이 나머지 나라와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오는 26일 폐막 연설을 위해 25일 다보스를 방문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므누신이 미리 레드카펫을 깔아준 셈이다. 므누신은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미국은 앞으로도 투자하기에 매우 매력적인 곳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18년 만에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미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라는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