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는 정치인 출신 장관에 대한 환상(?)은 모든 정부부처가 갖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힘 있는 정치인 출신 장관의 표본이었다. 현오석 전 부총리가 하지 못했던 인사 적체를 한번에 해소했다.
최 전 부총리는 2014년 7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재임하면서 기재부 인사에 숨통을 틔워줬다. 최 부총리 취임 직후 추경호 1차관은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에 발탁됐고, 이석준 2차관은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으로 이동했다. 김낙회 세제실장은 관세청장으로, 김상규 재정업무관리관은 조달청장으로 각각 승진·이동했다.
또 기재부 1급 이상 공무원 6명을 타 부처로 이동시켰고, 기재부 내에 5개의 과를 신설하는 추진력을 보여줬다. 관가에서 ‘만사경통(모든 일은 최경환을 통한다)’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근로소득증대세제·배당소득증대세제·기업환류세제)나 부동산 규제 완화는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최 전 부총리가 아니었으면 추진하기 어려운 정책이었다.
하지만 정치인 출신 장관의 한계도 분명하다. 장관직을 자기 경력의 마지막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정치인 경력에 한 줄 추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주영, 유기준 전 장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김영춘 장관까지 유력한 정치인 출신 장관을 셋이나 모셨다.
그러나 이주영·유기준 전 장관 모두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정치를 하겠다며 국회로 떠나갔다. 당시 정치인 출신에 다선 의원이자 정권의 핵심부였던 이 두 장관이 해수부의 정책 추진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는 의문이다. 두 장관 모두 한목소리로 국적 크루즈선을 출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도 성과가 없다. 오히려 해운업은 망가졌다.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현대상선은 7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김영춘 현 장관도 부산시장 불출마를 선언하기까지 출마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김 장관이 부산시장 출마설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해수부 공무원들이 잠시나마 갈피를 못 잡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정치인 출신 장관의 비애다.
정부부처들이 힘 있는 장관을 원하는 것은 일견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만큼 정책 추진이 예전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산을 갖고 있는 기재부를 설득해야 하고 관계부처, 국회, 이익·시민단체 등의 반대가 있다면 이를 돌파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분명 힘 있는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돋보인다.
하지만 정부부처들이 힘 있는 정치인 출신 장관을 기다리기보다는 누가 봐도 잘 만든 정책이고,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다 정교하게 정책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잘못된 정책이 힘 있는 정치인 출신 장관을 만나 실패한 사례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