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둔화를 비롯해 규제 리스크 등 유통업 전반을 둘러싼 환경이 악화되면서 유통업계의 영역 파괴가 가속화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이 우선시되면서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채널의 온라인화가 가속화되는가 하면, 편의점은 간편식 외에 원두커피와 화장품을 팔면서 커피전문점과 헬스&뷰티(H&B)숍을 위협하는 등 유통업태 간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6000만 잔 이상 팔린 커피가 있다. 언뜻 보면 여느 잘나가는 커피 전문점 얘기 같지만 사실은 편의점 업계 1위인 CU가 매장에서 판매한 원두커피 수치다. CU는 고급 원두와 커피머신을 사용해 매장에서 직접 내리는 즉석 원두커피를 아메리카노 한 잔 기준 1200원에 팔고 있다. 단순 계산해 보면 작년 한 해 커피 매출만 700억 원을 훌쩍 넘어 중소 커피전문점 매출에 비견된다.
즉석 원두커피는 CU 외에도 GS25와 세븐일레븐 모두 판매하고 있다. 편의점 원두커피의 원조격인 세븐일레븐의 ‘세븐카페’는 2015년 1월 처음 판매된 이래 2월까지 8150만 잔이, GS25의 ‘카페25’는 지난해 6400만 잔 등 누적 판매량이 1억 잔을 넘었다. 편의점 원두커피는 저렴한 가격에 커피 맛까지 개선하면서 커피전문점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편의점의 유통영역 파괴는 H&B로도 이어진다. 편의점 3사는 화장품 브랜드를 잇따라 선보이며 새로운 화장품 유통 채널로 부상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올리브영과 왓슨스, 롭스 등 H&B는 대부분 매장에 음료, 간편식을 진열하는 식음료 코너를 두는 등 기존 화장품 외에 식품 판매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편의점과 H&B가 서로의 텃밭을 공격하는 모양새다.
출점 제한 등 규제에 직면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전통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온라인으로 판매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신세계는 올 1월 온라인 사업에 1조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해 2023년까지 매출 10조 원, 국내 1위 플레이어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신세계는 백화점과 이마트로 나뉘어 있는 온라인사업부를 물적분할 후 합병해 이커머스 사업을 전담할 신설 법인 설립도 추진한다.
온라인 유통채널에서도 소셜커머스(통신판매업)가 오픈마켓(통신판매중개업)에 진출하는가 하면, 오픈마켓은 직매입을 통한 소셜커머스 영역을 넘보고 있다. 쿠팡과 티몬,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3사는 지난해 오픈마켓을 도입하거나 병행하는 체제로 전환해 고질적인 만년 적자 탈출을 꾀하고 있다.업계 관계자는 “IT 통신의 발달로 소비자들이 가장 저렴하고 양질의 상품이 많은 곳을 손쉽게 알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종전의 경쟁력만을 고수해서는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어려운 만큼 앞으로는 영역 파괴는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