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원회(EC)는 21일(현지시간) 미국 페이스북과 구글 등 IT분야 거대 기업들을 대상으로 순이익이 아닌 매출의 3%를 과세하는 디지털세 도입을 회원국에 제안했다. 약 50억 유로(약 6조5807억 원)의 세수가 추가 확보될 것으로 기대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EU의 긴장 관계가 고조되는 가운데 IT 대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제시됐다고 전했다. 지난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IT기업을 겨냥한 입법안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새롭고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면 성장을 억제하고 궁극적으로 근로자와 소비자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EU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EU 국가 중 다수는 미국 IT기업이 유럽에서 많은 이익을 남기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 것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EC는 “지금의 과세 규정은 물리적 거점이 없는 IT기업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지 않다”면서 “IT기업의 평균 실효세율은 제조업 등 기존 기업에 대한 세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IT기업들은 유럽에서의 이익에 대해 9.5%의 세금을 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전통적인 산업은 23.2%의 세금을 낸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C 부위원장은 “디지털화는 수많은 이점과 기회를 제공하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규칙과 시스템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비과세로 돌아가는 이익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EC는 중장기적인 과세 규칙을 제안했다. 물리적 거점이 없어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에도 유럽 내에서 △연간 매출액 700만 유로 이상△고객 수 연간 10만 명 이상△연간 3000건 이상 사업 계약 등의 기준을 충족하면 ‘디지털 거점’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과세하는 방안이다. 다만 과세 규칙 검토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단기적인 ‘응급조치’도 내놓았다. 과세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실현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IT기업 과세 기준을 현행 이익에서 매출로 전환하고 3%의 세율을 적용하는 이른바 디지털세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 세계 매출액이 연간 7억5000만 유로 이상, EU 역내 매출이 5000만 유로 이상인 기업이 그 대상으로, EC는 120~150개 기업이 해당된다고 밝혔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페이스북 등은 물론이고 소셜미디어, 차량공유서비스, 음식배달 플랫폼 등의 서비스와 광고 판매에도 새로운 규정이 적용된다.
다만 EU가 세제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28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아일랜드와 룩셈부르크 등 낮은 세율로 거대 IT기업을 유치한 나라들이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미국이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관세 조치를 23일 발동하는 가운데 새 디지털세가 미국과 EU의 무역 갈등을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페이스북, 구글 등이 포함된 미국 IT업계 단체인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의 크리스티안 보그린 유럽 부사장은 세제안에 대해 “분명히 정치적인 동기가 있으며 비유럽계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EU 조세담당 집행위원은 “미국 기업들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특정 국가를 타깃으로 제안된 규정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것은 ‘반 미국세’가 아니며 무역조치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120~150개의 기업이 영향을 받을 것이며 이 중 절반은 미국 기업이고 3분의 1은 유럽 기업”이라고 덧붙였다.
EU 당국자들은 22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 무역과 IT분야 세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WSJ는 EU국가들의 만장일치 여부는 불분명하며 EU 당국자들은 단기 과세안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아일랜드의 주요 사업부에서 2016년 263억 유로의 매출을 보고한 구글은 디지털세에 대한 논평에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