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새 돌아가는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다름이 아닌 드루킹 관련 수사에서 경찰이 보여준 태도 때문이다. 경찰은 드루킹을 체포한 이후 3주 정도나 긴 침묵을 이어가다가, 한겨레신문이 보도하니까 그제서야 부랴부랴 이 사실을 알렸다.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을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국민은 소수일 것이다. 그리고 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민첩하게 움직였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초동 수사를 비롯한 수사의 모든 부분이 아주 미흡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사 경과를 알린다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지자, “보고를 늦게 받아서 그랬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는 경찰 수뇌부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정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경찰은 대규모 수사단을 꾸리고 드루킹 사건을 파헤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데, 첫 단추에서 어그러진 수사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줄지는 모르겠다.
지금 경찰이 국민에게 보여 줘야 할 부분은 또 있다. 사건 초기의 수사가 왜 그랬는지, 만일 서울경찰청장의 말대로 보고가 늦어서, 본의 아니게 ‘사실과 다른 말’을 해야 했다면 보고체계가 뭐가 잘못됐는지, 그리고 3주 동안의 ‘침묵’은 어디서 비롯됐는지에 대해 지금이라도 국민에게 진솔하게 털어놔야 한다. 이런 과정도 없이 현재 자신들의 진정성을 믿어 달라면, 이를 믿을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만이 그나마 경찰보다는 검찰이 낫다고 생각하는 여론을 조금이라도 다시 돌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경찰과 검찰은 자신들이 수사를 제대로 한다 하더라도 수사 결과를 믿어 줄 국민이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은 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봐오면서, ‘이런 종류의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검찰의 ‘접근 방식’이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런 건 일종의 ‘학습된 편견’일 수 있지만, 이것이 이번엔 진짜 ‘잘못된 편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경찰은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
그런데 경찰 수뇌부는 이런 생각을 안 했던 모양이다. 이번 정권하에서의 경찰이나 검찰은 이전과 다르다고 말하기 전에, 행동으로 그 ‘차이점’을 보여주기를 국민은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대다수 수고하고 고생하는 경찰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하지만 드루킹 사건의 성격상, 지금 모든 것을 파헤치지 못하면 이 사건은 언제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고, 그때를 생각한다면 지금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기에,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영화 ‘공공의 적’에 나오는 강철중 형사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