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 세계 D램 점유율(올 1분기 기준)은 72.8%, 낸드플래시는 46.8%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를 넘겼다. 특히 작년 한국 반도체의 중국 수출액만 42조 원이 넘는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60%가량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와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50%에 육박한다.
중국 기업과 정부의 불만은 여기서 나온다. 화웨이·샤오미와 같은 중국 대표 스마트폰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9~10%에 불과하다. D램은 제조사가 삼성전자·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사실상 세 곳밖에 없는데, 중국 제조사들은 가격 협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현재 D램 반도체 가격은 2년 동안 200%나 폭등했다.
중국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3사의 가격 담합 혐의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인 건 이 같은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독점국은 지난 3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가격조사국, 상무부 반독점국, 공상총국 반독점국 등이 합쳐져 세워진 막강한 시장감독기구다. 반독점국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선 것은 출범 후 처음이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SK하이닉스는 지난달 31일 주말 중국 반독점 당국 조사관들이 중국 사무실을 조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중국 현지 매체들은 가격 담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과징금이 최대 44억 달러(4조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2016년께부터 최근으로 시기를 특정할 경우 최대 8조 원까지 과징금 규모가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반도체 가격 상승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시장 수급에 따른 결과”라고 말한다. 스마트폰, 컴퓨터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새로운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급이 모자라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반도체 제조 난도가 올라가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는 속도가 더딘 것도 이유다.
중국 정부의 이번 조사는 반도체 굴기(堀起)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이 해외업체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장비업체 ZTE가 미국 정부의 제재로 생존 위기까지 내몰리면서 반도체 산업 육성에 고삐를 죄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ZTE 제재 사태를 맞아 “상황이 긴박하다”며 “천하의 인재를 모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달 발표된 ‘2019년 중앙 국가기관 IT 제품 구매계획 공고’에 국산 반도체 서버가 처음으로 명시됐다.
특히 칭화유니그룹 산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를 비롯해 푸젠진화·허페이창신 등 중국 반도체 3사는 올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시험 생산을 하고 내년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5년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할 경우 30대 그룹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제자리 걸음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며 “그만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중요한데,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 정부는 지배구조 개선 등 기업 압박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