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몇 년 전 훌쩍 떠난 프랑스 여행에서 접했던 그림이 생각났다. “프랑스에서의 미술관 투어는 교양인의 덕목”이라는 친구의 성화에 오르세 미술관 투어를 하게 됐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나 보던 유명한 작품이구나’라는 생각 외에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내 발걸음을 붙잡았던 그림 한 점, 그것은 신인상파 폴 시냐크의 ‘아비뇽 교황청’이었다. 수많은 점을 찍어 그린 점묘화다.
빨간색과 파란색 같이 보색의 점들로 가득 찬 그림은 영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미간에 주름 몇 가닥이 잡히고 있을 즈음 “조금만 뒤로 와서 보세요”라는 투어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둘 발걸음을 뒤로 옮기는 순간 영 생뚱맞고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던 색들이 조화롭게 혼합되며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듯 가지각색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이 아닌가. 어릴 적 유행하던 ‘매직아이’가 떠올랐다.
애플의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말했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대학에서 정규 과목 대신 엉뚱하게도 글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서체 과목을 수강한 스티브 잡스는 그로부터 10년 후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게 된다.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가 “지금 우리의 순간이 미래의 어떤 시점과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 한 폭도 몇 걸음 떨어져 봐야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데,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는 데에도 조금의 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 둘의 기저귀를 치우느라 정신없는 내 친구의 오늘도 언젠가 환상적인 매직아이의 순간처럼 빛나지 않을까? 우리 인생에 쓸모없는 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