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은 안으로 굽는다. 가재는 게 편이고, ‘남’보다는 ‘우리’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굽어서는 안 되는 팔도 있다.
최근 법원은 제 식구를 감싼다는 시선을 받고 있다. 사법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의혹을 풀겠다며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임의제출뿐만 아니라 수사를 위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 단계에서도 검찰과 법원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200여 건이 넘는 사법농단 수사 관련 압수수색 영장 중 열에 아홉은 기각됐다. 대법원의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 18만8560건 중 16만8290건이 발부돼 발부율 89.3%를 기록했다. 통계상으로 보면 완벽한 역전(逆轉)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검찰의 수사 착수 이후 사법농단과 관련이 없는 다른 사건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도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 재직 시절 자료를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는 유모 전 재판연구관이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뒤 반출했던 대법원 문건, USB 등을 파기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례적’인 영장 기각에 ‘우려할’만한 상황이 현실화된 것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례적으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오늘도 사법부의 신뢰도는 끊임없이 시험을 받고 있다. 판결에 납득하지 못한 이들이 시위에 나서는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사법체계의 신뢰 회복을 위한 수사에서 논란의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검찰이 요청하지 않은 자료를 더 들이밀지는 못해도, 필요하다는 손을 쳐내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을까. 법원이 처음의 약속을 되새기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