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KDI에 따르면, 노조가 있는 사업체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2007년 이전에 기간제·파견직 비중이 10%포인트(P) 높으면 법 시행 후 기간제·파견직은 70.3%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정규직은 8.2% 증가하는 데 그치고, 용역·도급 등 간접고용을 포괄하는 기타 비정규직이 16.4% 늘었다. 기존 비정규직의 상당수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보단 간접고용으로 전환되거나 해고됐음을 뜻한다.
반면 무노조 사업체에선 기간제·파견직 비중 10%P당 정규직이 12.6% 늘고, 기타 비정규직은 6.9% 느는 데 그쳤다. 전체 고용 규모 감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증가가 두드러졌다.
KDI는 이 같은 차이의 배경을 근로조건의 경직성에서 찾았다. 비정규직 사용규제에 대한 기업 설문조사 결과, 0~10점 척도로 기업이 인식하는 근로조건 변경의 어려움이 1점 증가하면 기간제가 무기계약으로 전환될 확률은 2.8%P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종사자 규모가 2배 증가하면 기간제 근로자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확률은 8.4%P 떨어졌다.
근로조건 변경의 어려움은 대규모·유노조 사업체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노조의 규모가 큰 사업체일수록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을 변경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정규직 확대를 기피한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KDI는 전통적인 노동유연성의 개념을 고용에서 근로조건으로 확장해 정규직에 대한 노동유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남용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기존의 양적 규제만으론 고용의 질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는 호봉제·전일제로 대표되는 근로조건의 경직성을 완화해 다양한 형태로 정규직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기업들이 스스로 정규직 고용을 늘릴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단 KDI가 제안한 노동유연성 확보가 해고요건 및 비정규직 사용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식 노동개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확장된 개념의 노동유연성 확보는 정규직의 근로조건 양보를 통한 일종의 상생이 목표다.
박우람 KDI 연구위원은 “어떤 나라에서도 정규직의 고용보호 수준을 낮추고 해고 용이성을 높여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며 “사용자가 응답한 정규직 전환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차이와 연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정책 방향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