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상응조치로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부터 경제협력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문 대통령이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경협 카드를 비핵화 견인의 유인책으로 내세울 것을 트럼프 대통령에 요청한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에 적극적인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하면서, 정상회담의 ‘빅딜’을 이끌어 내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협 말고 우리가 북 비핵화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없다.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당근’도 북측에 제시돼야 한다. 그런 점을 고려한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이다. 무엇보다 북이 원하는 경제 지원으로 실질적인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방안이다.
하지만 비핵화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오히려 비핵화에 대한 기대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동안의 미·북 실무협상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검증과 상호연락사무소 개설, 종전선언 등에서 큰 틀의 합의를 본 반면, 북의 포괄적인 핵신고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해체, 제재 완화는 입장이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그동안 “비핵화 이전까지 제재 해제는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지만,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제재 완화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우리 의도”라고 언급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북한에서 핵실험이 없는 한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긴급한 시간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북핵 협상의 속도조절을 시사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 핵·미사일 동결과 경제 지원을 맞바꾸는 협상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핵동결은 국제사회가 요구해온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에서 한참 후퇴한 단계다. 이런 식으로 협상이 봉합된다면 북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우리 안보의 중대한 위협이 전혀 해소되지 않을뿐더러, 북핵이 존재하는 한 근본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은 불가능한 일이다.
남북 경협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야 하지만, 우리가 그 부담을 감당해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북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그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고는 경협의 동력을 살릴 수도, 통일 기반을 조성할 수도 없다. 비핵화의 획기적인 진전이 담보되지 않은 경제 지원은 또다시 ‘퍼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과거 수없이 되풀이해온 악순환이다.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할수록 제재는 더 견고하게 유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