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방크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인수한 복잡한 지방채 파생상품으로 인해 약 10년간 약 16억 달러(약 1조80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시장이 회복되고 규제가 강화됐음에도 도이체방크는 투자 실패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이전에 보고된 적이 없었던 해당 손실은 도이체방크가 단일 투자 중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것이며 최근 10년간 글로벌 금융업계에서 발생한 최대 투자 실패 사례 중 하나라고 WSJ는 지적했다. 16억 달러는 지난해 도이체방크 순이익의 약 네 배에 달하는 것이다.
내부 소식통들은 도이체방크가 수년간 회계장부에 기록된 자사 채권과 관련 파생상품의 가치가 시장이 제시한 것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외면해 왔으며 이에 대한 회계감사법인의 우려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도이체방크는 2007년 500개 미국 지방채를 약 78억 달러에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여기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학교들과 푸에르토리코의 공공기관, 뉴저지 교통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등이 발행한 채권들이 포함됐다. 도이체방크는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대비해 채권보증회사인 ‘모노라인(Monoline)’들과도 계약을 맺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지방채 발행기관들과 모노라인들이 채무상환 의무를 이행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커졌다. 이에 도이체방크는 2008년 3월 26일 버크셔로부터 추가로 디폴트 보호 계약을 맺었다. 버크셔가 신용부도스와프(CDS)까지 섞인 복잡한 파생상품 원금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도이체방크가 1억4000만 달러를 지불한 것이다. 이에 해당 투자건은 도이체방크 내부에서 ‘버크셔트레이드’로 불렸다.
그럼에도 지방채 투자 손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도이체방크의 안이한 대처로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도이체방크는 2011년 말 해당 투자에 대해 1억1500만 달러가 약간 넘는 금액을 대손충당금으로 마련했다.
비슷한 시기 도이체방크 회계감사법인인 KPMG가 대손충당금을 더 확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은행은 14페이지의 백서를 발행해 KPMG를 안심시켰다. WSJ가 입수한 백서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시장 조사와 지방채 가격 회복과 디폴트 가능성에 대한 추정에서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개월도 안 돼 은행 내부 감사에서 지방채 투자손실 규모를 놓고 다시 불꽃 튀는 논쟁이 일어났다. 도이체방크는 해당 채권 포트폴리오를 트레이딩 장부에서 빼버리고 대출과 미수 항목으로 놓으려 했으나 법무와 회계팀에서 이에 반대해 성사되지 못했다.
2012년 가을에는 도이체방크의 내부 분석 결과 버크셔가 보증했던 지방채들에 대한 가치 산정이 완전히 틀렸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같은 해 말 도이체방크는 대손충당금을 1억6100만 달러로 올렸으며 부실부채를 정리하기 위한 ‘배드뱅크’ 계획을 발표했다. 배드뱅크로 넘어간 부실자산에는 지방채 투자는 물론 코스모폴리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와 일부 구조화 부동산 채권, 기타 모호한 파생상품들이 포함됐다.
2013년 4월 도이체방크는 신주 발행으로 33억 달러를 새롭게 조달했으나 아직 정리하지 못한 지방채 포트폴리오에 대한 내부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됐다. 버크셔는 자사가 CDS를 통해 보호하기로 한 금액이 도이체방크가 추산한 손실액보다 약 10억 달러 적다고 분석했다. 그 해 말 도이체방크는 대손충당금을 5억7900만 달러로 올렸으나 여전히 손실을 다 벌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대손충당금을 올린 끝에 2016년 초 그 규모는 마침내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결국 도이체방크는 문제의 파생상품 포트폴리오 인수 후 9년이 지난 2016년 여름이 돼서야 이를 15억8000만 달러에 청산했다.
같은 해 8월 버크셔는 1억9500만 달러를 지급해 해당 지방채에 대한 8년의 CDS 계약을 청산한다고 밝혔다. 당시 버크셔는 계약 상대방이 도이체방크라는 사실을 공개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