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트럼프와 이베리코

입력 2019-02-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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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정치경제부 기자

황금돼지해 연초부터 돼지 농가가 울상이다. 돼짓값 폭락 때문이다. 올 들어 돼지 한 마리를 팔아 농가가 받는 돈은 30만 원이 안 된다. 한돈자조금이 추산한 돼지 한 마리 사육비는 36만 원이다. 농가에선 팔면 팔수록 손해라며 아우성이다. 소비라도 늘면 좋으련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이유는 두가지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제다. 미국산 돼지고기는 최근 저가 물량 공세로 한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 들어온 미국산 돼지고기는 22만 톤으로 사상 최대치다. 트럼프발 무역 전쟁으로 중국 수출길이 막힌 미국 축산업자들이 한국으로 발길을 돌린 게 결정타다.

수입을 줄이면 안 되냐고? 통상으로 먹고사는 나라엔 어려운 얘기다. 돼지고기는 한미 간 통상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축산물 수입으로 양국 무역수지 차이가 줄어든 덕에 그나마 트럼프의 ‘관세 심통’을 달랠 수 있다. 가격으로 승부로 걸어보려 해도 한국 농가 규모론 미국 기업농을 이기기는 어렵다.

두 번째 장애물은 스페인산 돼지고기, 이베리코다. 값은 국산보다도 비싸지만 맛으로 고급육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탄탄한 육질과 풍부한 마블링이 장점이다. 오래 방목해 도토리를 먹여 키웠다는 스토리도 소비자 입맛을 당긴다.

이런 매력 덕에 인기가 알음알음 높아지더니 지난해엔 8만 톤이나 수입됐다. 오죽하면 가짜 이베리코까지 판 칠 정도가 됐겠나. 가격만이 경쟁력이 아니라는 증거다.

이베리코 맛이 절로 좋아진 게 아니다. 스페인 농가에선 고기 맛을 높이기 위해 사육 기간을 늘리고 품종도 꾸준히 개량해왔다. 처음엔 생산비가 올라 고생했지만 그 성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대로다. 우리 농가도 돼짓값이 오르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사육 방식을 바꾸고 우수한 품종도 길러내야 한다. 고기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면 더욱 좋다. 적의 전략이 좋으면 베끼는 것도 전략이다. 이베리코가 우리 농가의 갈 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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