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개설허가 된 국내 첫 영리병원이 개원도 못한 채 문을 닫게 됐다.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둘러싼 제주특별자치도와 녹지국제병원의 갈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정부는 이번 설립허가 취소를 계기로 더 이상의 영리병원 사업계획 승인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 계획도 물건너갔다.
◇왜 취소 됐나= 지난해 12월 5일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을 조건부 개설허가한 건 정부가 외국의료기관 도입을 추진한 지 13년 만이었다. 의료관광을 비롯한 의료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고, 제주도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키우겠다는 차원이었다.
2015년 12월 사업계획서를 승인받은 녹지 측은 총사업비 778억 원을 투입해 2017년 7월 28일 제주헬스케어타운에 병원을 준공하고, 의사 등 인력 134명(제주도민 107명)을 채용했다. 녹지병원은 지하 1층과 지상 3층, 연면적 1만8223㎡ 규모다. 병원에 채용된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녹지병원 개설 허가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반발도 컸다.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2017년 11월 1일부터 12월 26일까지 진행된 네 차례의 심의회에서 제주도에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대상으로 한 조건부 허가’ 의견을 제시했으나, 4월 발족한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는 10월 4일 제주도에 ‘개설 불허’를 권고했다.
이에 제주도는 녹지병원을 방문, VIP 병실부터 지하 기계설비실까지 살펴본 결과 최고급 병실 등 현재의 시설은 프리미엄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위한 의료·휴양시설 외에는 활용이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내국인 진료 제한’을 조건으로 개설을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녹지병원 개원에 대한 기대는 컸다. 앞선 보건산업진흥원의 정책연구에서도 해외환자 유치형 영리병원에서 해외환자 30만 명 유치 시 생산유발 효과가 약 1조6000억 원에서 4조8000억 원, 고용창출 효과는 약 1만3000명에서 3만7000명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내국인 진료 제한’이라는 조건이 걸림돌이 됐다. 녹지병원은 개원을 미루고 2월 개설허가 조건이 부당하다며 제주도를 상대로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삭제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6일에는 제주도에 “행정소송과는 별개로 제주도의 개설허가를 존중해 의료기관 개원에 필요한 사항에 대한 준비계획을 다시 수립하고 있다”며 개원 기한 연장을 요청했다.
제주도는 녹지병원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지난달 5일 개원 기한에 맞춰 개설허가 취소를 전제로 한 청문 절차에 돌입했고 결국 ‘이유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
허가 취소로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다. 당장 녹지그룹 측으로부터 제기될 소송과 투자자금 처리 문제도 골칫거리다.
제주도는 “법규에 따라 취소 처분을 하고 이후 소송 등 법률 문제에 적극 대처한다는 방침이다”며 “법적 문제와는 별도로 헬스케어타운의 기능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사업자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투자자 녹지, 승인권자인 보건복지부와 제주도 4자 간 협의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취소 반응과 영향은= 의료계 내에선 안도와 아쉬움의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국내 다른 병원들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의견이지만 미래 먹거리 포기 논란은 여전하다.
그동안 영리병원을 반대해온 측은 영리병원 허용 시 의료 공공성이 무너지고 경제적 수준에 따른 의료 양극화가 초래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해왔다. 영리병원의 도입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서비스가 확대될 경우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지고 의료비가 폭등할 수 있다는 논지였다.
반론도 있다.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쪽은 환자 입장에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이 확대되고, 보건의료 산업 육성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영리병원의 필요성과 개설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