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22일(현지시간) 예고한 대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8개국에 부여했던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한시적 예외 조처를 중단하기로 공식 발표하면서 국제유가가 거의 6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날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2.7% 급등한 배럴당 65.70달러로 마감했다. 영국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 가격은 2.9% 뛴 배럴당 74.04달러로 장을 마쳤다. 두 유종 가격은 모두 지난해 10월 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우리의 목표는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주요 수입원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제재로 이란은 100억 달러(약 11조4100억 원) 이상의 석유 판매 수익을 잃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미국 대선에서 재선 성공이 지상과제인데 유가 급등을 초래할 수 있는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내 동맹국들과의 유대를 강화해 유가 혼란을 막는다는 계획이다. 백악관과 폼페이오 장관 모두 두 나라가 산유량을 늘려 고유가를 막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사우디의 칼리드 알-팔리 산업에너지광물부 장관은 이날 원유 증산 여부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그는 대신 “우리는 시장 균형을 유지하고자 다른 산유국과 협조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사우디 관리 모두 균형 있는 유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은 6월까지 하루 120만 배럴 감산을 시행하고 있다. 6월 총회에서 감산을 멈추기로 하면 유가 오름세를 다소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오일머니가 국가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사우디 등 OPEC 국가들이 미국의 의도를 따를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란 원유 수출을 막는다는 목표가 계획대로 흘러갈지도 미지수다. 8개국 중 중국과 터키는 이미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과 이란의 협력은 열려 있고 투명하며 법을 따르고 있다”며 “이는 존중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터키 정부도 “미국의 움직임은 이란 국민에 피해를 끼치고 이미 혼란스러운 중동 지역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란도 미국의 결정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다시 꺼내들며 맞불을 놓았다.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의 알리레자 탕사리 사령관은 이날 자국 파르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봉쇄할 수밖에 없다”며 “적이 위협하면 우리는 영해를 지키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 페르시아만 산유국 유조선들이 오가는 원유 수송의 대동맥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16년 전 세계 원유 총 공급량의 19%가 이 해협을 거쳐 갔다. 전문가들은 해협이 봉쇄되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종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