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발단은 문체부의 복지부 ‘패싱’이었다. 문체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게임중독, 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공식 분류하기에 앞선 지난달 초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WHO에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문체부가 복지부에 의견을 묻거나 협의를 요청하는 절차가 생략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건의료 분야에 있어서 국제기구에 입장을 전달할 땐 복지부와 협의해 ‘정부 명의’로 보내는 게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라며 “지난달 문체부에서 WHO에 의견서를 냈다는 사실도 나중에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지적했다.
WHO가 25일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을 의결한 뒤엔 복지부에서 WHO의 결정을 수용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6월부터 의학전문가와 이해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들어 의학적·공중보건학적으로 게임중독의 개념을 정립하고, 실태조사를 거쳐 유병률 등을 살펴본 뒤 구체적인 진단기준을 마련한다는 계획까지 내놨다.
이번엔 문체부가 반발했다. WHO의 결정에 대해 추가로 이의를 제기하기로 했다. 또 복지부가 WHO 권고를 수용하기로 한 만큼, 복지부가 주도하는 협의체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는 WHO에서 수년간 논의된 사안이다. 국내에선 2013년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주도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 가칭 ‘게임중독법’ 제정이 추진됐다. 결과적으로 복지부와 문체부는 WHO 결정에 앞서 협의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부처 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국무조정실장이 급하게 차관회의를 주재하고, 국무총리가 여론을 수습해야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면 국무회의나 차관회의 등 공식적인 회의체 ‘밖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특정 부처와 업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온 문체부의 책임이 더 크다. 단 게임중독 예방·관리 주무부처인 문체부에 의견을 구하지 않고 정책을 준비해온 복지부도 할 말은 없다.
28일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논의기구를 복지부가 아닌 국조실 주도로 운영하기로 정리되면서 복지부와 문체부 간 갈등은 봉합됐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복지부와 문체부가 ‘대한민국 정부’로서가 아닌 복지부와 문체부로서 존재하길 고집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