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5월 화웨이테크놀로지를 제재한 것에 대해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은 ‘디지털 철의 장막’을 치면서 세계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국이 4년 전 디지털 실크로드에 착수하면서 이미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자신만의 ‘디지털 죽(竹)의 장막’을 구축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디지털 죽의 장막’에 대한 비판은 주로 정치적 측면에 쏠려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중국 화웨이 기술자들이 우간다와 잠비아 등 아프리카 정부의 통신 감청과 IT 기기 무단 접근 등의 방법으로 야당을 탄압하는 것을 도왔다고 폭로했다.블룸버그통신은 ‘일대일로(一帶一路·현대판 실크로드)’의 다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실크로드는 중국 자금을 받은 국가들을 부채 위기로 내몰리게 하고 오랫동안 번성했던 안정적 다당제 민주주의가 중국식의 권위주의 모델로 바뀌게 할 우려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사실 미래 디지털 인프라에 필요한 재원이 부족한 신흥국과 개도국에 중국의 자금 지원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미국 워싱턴 소재 컨설팅 업체 RWR어드바이저리그룹에 따르면 중국은 2012년 이후 올해 초까지 전 세계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790억 달러(약 95조 원)를 투입했다. 디지털 실크로드와 관련 중국의 돈이 들어간 국가는 인도와 캄보디아 미얀마 등 아시아는 물론 멕시코와 러시아, 에티오피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걸쳐 있다.
영국 BBC방송은 일대일로 전체가 아니라 ‘디지털 실크로드’ 그 자체만으로도 총 2000억 달러 가까운 투자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며 이는 중국은 물론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 등 세계 여러 국가의 경제성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경제 방면에서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에 합류한 국가들은 기회만큼 커지는 위기를 맞고 있다.
호주 민간 싱크탱크 로위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디지털 실크로드에 합류한 많은 신흥국이 기본 통신 인프라 부족에서 벗어나 4G 이동통신망을 갖추는 등 최소한 기술 방면에서 도약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로위연구소는 가장 큰 문제로 디지털 실크로드가 근본적으로 공급 중심 프로젝트라는 점을 꼽았다. 기술 인프라 제공은 신흥국과 개도국의 2차와 3차 산업을 강화하기 위한 기초를 형성하지만 혜택이 경제 전반에 골고루 돌아갈지는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또 로위연구소는 중국이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기술을 전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특정 기술에 대해서 중국시장에서 먼저 확실한 발판을 다지고 나서 뒤늦게 다른 나라에 전달하거나 기술 제품과 서비스를 중국에서 판매하기 전에 신흥국을 시험장으로만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로위연구소는 디지털 실크로드에 동참한 국가들이 자국의 필요에 따라 중국 기술을 어떻게 채택할지를 신중하게 평가해서 장기적으로 자신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도 중국 기업들이 디지털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현지 업체들이 경쟁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며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 빅데이터를 결국 중국에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데이터 흐름을 통제함으로써 중국 IT 대기업들은 시장을 더욱 잘 이해하게 돼 현지 토종업체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