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가주택 기준을 정비한 것은 11년 전이다. 2008년 기획재정부는 급격한 집값 상승을 고려해 기존 6억 원이었던 고가주택 기준을 9억 원으로 높였다. 이후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고가주택 기준은 9억 원에 머물러 있다. 그 사이 서울 아파트값(KB부동산 조사 기준)은 평균 5억1000만 원(2008년)에서 8억4000만 원(올해)으로 3억 원 넘게 올랐는데 비싼 집의 기준은 그대로다. 최근 서울 집값 상승세까지 감안하면 현행 고가주택 기준은 더 무색해진다. 강남은 물론 강북권에서도 9억 원이 넘는 아파트가 수두룩하다.
집값이 9억 원을 넘는 순간, 각종 불이익이 가해진다. 정부는 지난 11일부터 9억 원 이상 주택 보유자는 주택금융공사 등의 전세대출 보증을 받을 수 없게 했다. 보증서를 받으면 대출금리가 연 2.6~3.2%이지만, 무보증 전세대출은 4% 중반대로 높아진다.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선 시세 9억 원이 넘는 주택을 구입할 때 실거주 목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주택담보대출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고가주택 보유자는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연 1∼2%대 장기 고정금리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도 신청할 수 없다.
청약시장에서도 고가주택 기준을 두고 말이 많다.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이 예상되는 ‘로또 단지’라도 분양가가 9억 원을 넘으면 중도금대출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불과 2~3년 전만해도 10% 수준이던 서울의 분양가 9억 원 초과 아파트 비중은 올해 절반(48.8%)에 육박하고 있다. 올 들어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두 채 중 한 채는 분양가의 60%에 해당하는 중도금을 당첨자가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청약시장이 ‘현금 부자들의 잔치’로 전락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고가 주택을 사고 팔 때 내야 하는 세금도 만만찮다. 집을 살 때 내는 취득세의 경우 9억 원 이상 주택은 3%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6억 원 이하 주택 취득세율은 1%, 6억 원 초과~9억 원 이하는 2%이다. 5억 원짜리 집을 사면 취득세가 500만 원이지만, 9억 원짜리 집을 샀다면 270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집값은 80% 비싸지만, 취득세는 4배 이상 껑충 뛴다. 말 그대로 ‘세금 폭탄’ 수준이다. 집이 한 채뿐인 1주택자라도 9억 원이 넘는 주택을 팔면 9억 원 초과분에 대한 양도세를 내야 한다.
이뿐 아니다. 9억 원이 넘는 고가주택은 중개수수료 부담도 만만찮다. 서울 기준으로 최고 요율이 0.9%로 6억~9억 원 주택(최고 0.5%)의 두 배에 가깝다. 8억 원짜리 집을 살 때 중개수수료는 최대 400만 원이지만, 9억 원일 경우 810만 원까지 올라간다.
이쯤 되면 정부가 고가주택의 잣대로 삼는 가격 기준 ‘9억 원’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올 법도 하다. 서울 집값이 많이 올라 9억 원이 넘는 아파트가 넘쳐나고 있는데, 11년 전 기준을 들이대 세금·대출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공자도 논어 학이(學而)편에서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고 했다.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라’는 뜻이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제도나 기준은 뜯어고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정부는 고가주택 기준을 당장 손볼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세수(稅收)가 줄어드는 문제뿐 아니라 고가 기준 상향 조정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서울 집값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집값 급등은 서울과 수도권 일부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만큼 기준 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 집값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가주택 기준 상향 조정이 ‘그들만의 리그’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고가주택 기준을 달리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동안 집값이 많이 오른 지역을 중심으로 고가주택 기준점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잘못된 정책과 기준은 빨리 바로잡는 것이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