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도 오지 마"…'우한 폐렴'이 낳은 극단적 이기주의

입력 2020-01-30 14:30 수정 2020-01-3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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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입국금지 이어 한국인 송환도 반대…정부엔 '중국 방문자' 등원·등교 금지 민원 폭주

▲29일 중국 우한 교민의 국내 격리수용 장소로 결정된 충북 진천군 덕산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을 찾은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격앙된 진천군민의 거센 항의 속에 인파에 파묻혀 괴로워하고 있다.  (뉴시스)
▲29일 중국 우한 교민의 국내 격리수용 장소로 결정된 충북 진천군 덕산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을 찾은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격앙된 진천군민의 거센 항의 속에 인파에 파묻혀 괴로워하고 있다. (뉴시스)

‘우한 폐렴’으로 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극단적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다. 중국인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에 이어, 이제는 우리 국민끼리도 편을 나눠 배척하는 상황이다. 정부부처에는 중국 방문력이 있는 아동의 등원ㆍ등교 금지를 요구하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30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는 4명으로 전날과 같았다. 확진환자를 포함한 조사대상 유증상자는 183명에서 240명으로 늘었다. 이 중 199명은 음성으로 격리 해제됐으며, 41명은 격리돼 검사가 진행 중이다.

정부의 검역조치 강화로 추가 확진환자 및 국내 사람 간 감염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정부에 대한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먼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구하는 청원 참여자가 이날 정오를 기준으로 6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질환 유무와 관계없이 특정 국가에 대한 입국 금지는 불가하다는 정부 설명에도 불구하고, 청원 참여자는 날로 늘어나는 상황이다. 서울 대림동, 가리봉동 등 중국인 밀집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족과 중국인들도 반중 여론 확산에 숨을 죽이고 있다. 29일 홍대입구역 인근에선 혐오 발언을 빌미로 한국인과 중국인 간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중국 우한시에서 송환되는 우리 교민들에게까지 확산하고 있다. 2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전세기 입국자 천안ㆍ아산 수용을 취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날은 격리수용시설인 아산 경찰 인재개발원과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입구에서 송환자 아산ㆍ진천 수용 반대를 요구하는 지역주민들이 해산을 요구하는 경찰과 종일 대치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안전을 확보하려는 심리로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격리를 요구할 순 있지만, 지금은 감염 가능성과 상관없이 모든 중국인, 우한에서 들어온 모든 한국인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며 “유럽이나 미국에서 중국과 같은 아시아권이란 이유로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특정 집단에 대한 배척이나 혐오는 안전 확보와는 무관한 비이성적인 행태”라며 “특히 선거를 앞두고 격리시설이 있는 지역에 연고를 둔 일부 정치인들이 혐오를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에선 중국인 등 특정 대상에 대한 분노가 관계부처에 대한 악성민원으로 표출된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등에는 방문지역과 방문 시기,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중국에 방문한 적이 있는 모든 아동과 청소년의 등원ㆍ등교를 금지해달라’는 민원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잠복기인 14일 이내에 우한을 비롯한 후베이성에 다녀온 아동과 학생 교직원의 등원ㆍ등교를 제한하고 있다.

민원 중에는 특정한 요구 없이 욕설이나 폭언을 쏟아내는 ‘분풀이용’ 민원도 상당수다. 일례로 한 부처에선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는 민원인에게 담당 공무원이 “욕설을 하시면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고 대응하자 민원인이 “넌 그렇게 고결하냐”며 욕설과 폭언을 쏟아냈던 일도 있다.

무분별한 민원은 ‘업무 마비’로 이어진다. 민원전화를 받는 공무원은 대개 5급(사무관) 이하 실무자다. 따라서 등원ㆍ등교 금지와 같은 요구에 정부의 정책 방향과 다르거나 ‘책임질 만한’ 답변을 내놓기 어렵다. 그럼에도 많은 민원인이 “내 자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당신이 책임질 것이냐”는 등의 논리로 공무원들에게 민원 수용을 강요하고 있다.

한 관계부처 공무원은 “30~40분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있고, 끊으면 계속해서 전화하는 민원인도 있다”며 “그동안 그 공무원이 맡은 업무는 사실상 중단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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