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보며 17년 전 사스 바이러스로 인해 전 중국이 멈춰선 당시를 잊을 수가 없다. 2003년 사스 당시 필자는 베이징 주중한국대사관에서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지원센터 소장으로 근무했었다. 베이징 도시 전체가 정지화면 같은 유령의 도시였고, 까르푸 매장에 있던 그 많은 물건들이 순식간에 동이 나 텅텅 비워진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사스 사태의 책임을 물어 베이징 시장과 위생국장을 경질했고 엄청난 행정적, 경제적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중국이 2003년 사스 사태를 극복하고 힘들게 쌓아온 G2 글로벌 패권국가로서의 자존심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분위기이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과거 사스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에 있다. 단순히 그 전염성과 사망자 수를 뛰어넘어 향후 중국 정치 거버넌스의 지형을 바꿀 수도 있는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2003년 사스 때는 인터넷과 모바일 메신저가 발달되지 않아 민중의 목소리가 집결되지 않았지만,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의 경우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모바일을 타고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인터넷 감시 시스템인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을 통해 정보 차단에 나서고 있지만 민심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민심의 이탈은 우한시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가 도화선이 되었고 우한 적십자사와 정부 공무원이 결탁한 부패사건이 화약고에 불을 지폈다. 지난 1일 중국 방송을 통해 한 남성이 우한시 적십자사 창고 옆 검은색 차량 트렁크에 3M 마스크 상자를 싣는 장면이 중국 전역에 생중계되었는데, 차 한쪽에는 흰색으로 ‘정부 공무원을 위한 차량’이라고 적혀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보낸 마스크 및 의료구호 물품을 빼돌리는 장면이 그대로 포착된 것이다. 이 동영상은 모바일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이에 대한 거센 비난의 목소리가 중국 SNS 공간을 도배할 정도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산둥성 웨이팡시 산하 야채 집산지로 유명한 현급시인 서우광시가 신종 코로나 구호물자로 350톤 규모의 채소를 우한시 적십자사에 기증했는데, 우한시 적십자사가 현지 공무원과 결탁해 시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팔았다는 얘기가 급속히 전파되면서 중국 공공기관의 부패와 불신 그리고 수직적 국가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1980년대생인 바링허우(八零後) 세대부터 대학생까지 중국 젊은층들이 그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확진자 및 사망자 수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지나가고 다가올 중국 정치 거버넌스 변화에 대한 젊은 민심의 요구에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대응할지? 신종 코로나보다 더 강력한 정치 통치 변화에 대한 민심의 바이러스가 결코 심상치 않아 보인다. 중국 공산당의 권위적 리더십과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중국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상태에서 이번 사태는 중국인 해외이민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수치는 없지만 부유층을 중심으로 해외이민자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유엔협력기구인 국제이주기구(IOM)가 발표한 ‘세계이민보고서(World Migration Report 2020)’에 의하면, 2019년 2억7200만 명이 해외이민을 했고, 그중 중국인 해외이민자 수가 1100만 명으로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정부는 2년 전부터 해외이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고, 최근에는 중국 정부의 자본 해외유출 통제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 등으로 이민이 쉽지 않자 중국의 부유층들은 불법과 편법을 동원한 해외이민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닥쳐올 중국 정치 거버넌스 변화 요구에 대해 중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따라 향후 중국몽의 미래가 달려 있다. 누구보다 중국 지도부들은 과거 맹자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득민심자득천하(得民心者得天下), 실민심자실천하(失民心者失天下).’ 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고, 민심을 잃는 자는 천하를 잃는다는 것이다. 민심을 살펴보고 소통해야 비로소 소프트웨어 강국으로서의 중국몽이 실현될 수 있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