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바이러스(virus)는 그리스어의 ‘독(毒)이나 해로운 액체’에서 온 단어다. 바이러스는 혼자서는 살 수 없어 다른 생명체에 기생해야만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진화과정의 아주 하위 단계에 있는 생물이다. 하지만, 이름의 유래처럼 때로는 우리 삶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바이러스병은 사람뿐만 아니라, 농작물에도 발생한다. 주로 종자를 파종해 재배하는 1년생 작물은 재배 기간이 짧아 바이러스병에 걸려도 피해가 그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종자 소독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다.
그러나 사과, 배, 포도, 복숭아처럼 오랜 기간 재배해야 하는 과실나무는 얘기가 다르다. 과수에 발생하는 바이러스병은 사람의 만성 질병처럼 눈에 쉽게 보이지 않고 오랜 기간 나무에 잠복해 있다가 때가 되면 심각한 피해를 일으킨다.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기도 하고 나무의 체력이 약해져 다른 병이나 해충으로 인한 피해를 더 쉽게 받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과실의 품질이 떨어지고 수량이 줄어드는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과수는 생산량이 20~40% 줄고, 열매의 당도도 2~5브릭스(Brix)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타까운 것은 바이러스병 치료제가 아직 개발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감기의 완전한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것처럼, 농작물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 개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과수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책은 예방이 최선이다. 초기에 바이러스병에 걸린 나무를 정확하게 진단해서 없애는 것이 중요하며 근본적으로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건강한 묘목을 생산해 보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미국이나 네덜란드 등 많은 농업 선진국에서는 바이러스가 없는 건강한 묘목의 생산·보급 시스템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가 과수 우량 묘목 생산과 유통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이에 발맞춰 올해까지 우리나라 주요 5대 과수인 사과, 배, 복숭아, 포도, 감귤의 바이러스 무병 묘목 생산 기술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구체적으로는 이들 5대 과수의 어린 식물체를 열처리하거나 항바이러스제가 포함된 조직배양 배지에서 자라게 한 후, 세포분열이 왕성한 생장점을 잘라 기르는 것을 반복하여 바이러스가 철저히 제거된 묘목을 선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무병 묘목은 전정가위나 톱과 같이 나뭇가지를 자르는 도구를 잘 소독하고 진딧물, 깍지벌레 등 바이러스를 옮기는 해충을 철저히 방제하면 과수의 경제 수명(20년 이상)이 다할 때까지 바이러스 감염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미 국내에서 육종한 과수 품종은 90.7% 바이러스 무병화를 완료했고, 2022년까지 100% 달성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올 하반기부터는 지자체와 민간 등에도 기술을 보급하여 건강한 무병 묘목 생산이 확산되도록 할 계획이다.
요즘 사과, 배의 화상병을 비롯해 수입 과일과의 경쟁 등 우리 과수 농가는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다. 침체에 빠진 과수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선진적 묘목 유통 생태계를 조성하여 과실의 수량과 품질을 향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그루의 나무가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루듯, 건강한 과수 묘목 보급은 우리 과수산업의 미래에 희망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과수산업이 품질 좋은 과실 생산으로 국민으로부터 더 사랑받을 수 있도록 농촌진흥청은 연구와 기술 보급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